이제는 국제적인 관광지가 된 제주도, 제주에는 눈을 즐겁게 하는 볼거리가 많지만 입을 즐겁게 하는 먹거리도 다양하다. 그 중에 하나가 오로지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제주 재래 흑돼지다. 그것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주 재래 흑돼지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흑돼지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식당이 있다. 그럼 지금부터 고소한 제주 흑돼지의 맛에 빠져보자. 

 

제주도에서 돼지고기 가격이 비싼 이유

 

막대기 휘두르며 볼일을 보았던 아찔한 옛 기억을 가진 제주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외식메뉴를 꼽으라면 단연 돼지고기일 것이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 역시 제주에서 꼭 먹어야 할 것으로 제주 흑돼지를 꼽는다. 관광객들 상당수가 제주에서 돼지고기를 먹으면 더 싸게 먹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산이다. 육지의 식당보다 제주에서 돼지고기를 먹을 때 가격이 더 비싸 혹시 바가지를 쓰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바가지는 아니다. 제주에서 돼지고기 가격이 비싼 이유가 있다. 

 

제주지역에는 다른 지역 돼지와 돼지고기 부산물 반입이 일체 금지돼 오로지 제주산 돼지고기만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지난 1999년 12월 돼지열병 청정화를 선언한 이후 2002년 4월부터 반입금지 정책을 시행, 제주에서는 제주산 돼지고기와 일부 냉동 수입육만 유통된다. 결국 제주도민이나 관광객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일반 돼지고기보다 비싼 제주산 돼지고기만 먹을 수밖에 없다. 

 

제주산 돼지고기 중에도 유독 인기 있는 흑돼지에는 비밀이 있다. 제주 흑돼지는 보통 돼지고기보다 높은 영양가를 자랑하며 육질이 훨씬 쫄깃쫄깃하다. 제주에서 키우는 흑돼지의 수량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제주 흑돼지는 귀한 고기로 분류된다.

 

천연기념물 제550호 제주 흑돼지

 

제주 재래 흑돼지는 옛 만주지역에서 서식하던 돼지가 한민족과 함께 유입되며 기르게 된 것으로 추정되며 제주에서 발견된 소와 돼지 등의 뼈로 미루어보아 제주에서 흑돼지가 서식하던 시기는 석기시대 말이나 청동기 시대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 탐라지 성호가설 해동역사 등의 문헌에도 제주에 돼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제주 재래 돼지는 돗통, 돗추렴, 수애(순대), 돔베고기, 돼지고기 적갈, 고기 국수 등의 제주에서만 발견되는 문화를 만들었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 재래돼지의 유전정보를 활용한 ‘난축맛돈’이 개발되면서 명품화가 시도되고 있다.

 

▲제주 재래 흑돼지

제주 흑돼지는 근대화를 거치며 외국에서 도입된 개량종 돼지와의 교잡으로 순수 재래 돼지의 개체수가 점점 사라져 갔다. 그러다 가까스로 제주특별자치도 축산진흥원이 1986년 우도 등 제주 재래종 돼지 5마리를 확보하여 복원사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제주흑돼지는 2015년 3월 천연기념물 제550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시중에서 팔고 있는 제주 흑돼지는 순수 혈통이 아닌 외래종과의 교잡으로 개량한 개량종이다. 제주 재래 흑돼지는 유전자 특성 분석 결과 육지 재래 돼지와도 차별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외형상으로도 흑돼지는 다른 종보다 몸집이 작고 배 부분이 좁다. 귀는 작고 위로 뻗어 있으며 성장 속도는 느리지만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보통 돼지는 10마리정도의 새끼를 낳는데 제주 흑돼지는 5마리에서 8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제주 재래 흑돼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전 이미 2014년 10월에 슬로푸드 맛의 방주에 등재되어 지키고 보존되어야 할 품종으로 인정받았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재래 흑돼지를 먹을 수 있는 곳은 어디?

 

제주시 한경면 두조로에 가면 30년 전부터 제주특별자치도 축산진흥원으로부터 분양받아 동물복지로 애지중지 제주 재래 흑돼지를 키우고 있는 분이 있다. 넓은 정원 한 가운데 팽나무 연리지가 있는 <연리지가든>의 김응두 대표는 넓은 사육 공간에서 돼지를 기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돼지가 잡병에 걸리지 않고 당연히 항생제를 쓸 필요가 없다. 또한 이용도축허가업체(본인이 사육한 돼지를 직접 도축하여 판매)로 직접 기른 돼지를 도축하여 판매를 한다. 그만큼 믿고 먹을 만한 식당이다. 그러니까 <연리지가든>은 제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재래 흑돼지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흑돼지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점인 것이다. 

 

▲연리지가든에서 방목으로 키우고 있는 제주 재래 흑돼지

일반돼지는 6개월 정도 기르면 100kg에서 120kg까지 성장을 하는데 제주 재래 흑돼지는 18개월 이상을 키워야 70~80kg의 돼지를 얻을 수 있고 도축을 해도 발골을 하고 부산물을 제하고 나면 판매 가능한 부위가 30~40kg 내외라고 한다. 누가 보아도 경제적 타산이 맞지 않다. 그러나 연리지의 김응두 대표는 4000평이 넘는 땅에 겨우 40마리의 돼지를 기른다.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좋은 먹이를 먹고, 외부의 해로운 병균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보장 받고, 항생제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는...... 1마리의 돼지가 400평을 가진 셈이다. 문득 이곳의 돼지 녀석들이 부러워졌다. 필자는 기껏 넓어야 25평 아파트에서 여럿이 살고 있는데 이 녀석들은 푸른 풀밭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일반돼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제주 재래 흑돼지 맛

 

경제적 타산도 맞지 않을뿐더러 40마리의 흑돼지를 키워 한 달에 5마리 정도를 도축할 수 있고, 계산해보면 1인분에 200그램이라고 하면 하루에 25인분 정도만 판매할 수가 있다. <연리지가든>에서는 예약을 해야지만 먹을 수 있고 메뉴판도 없다. 1인분에 1만8천원이고 고기는 고를 수 없다. 그러나 그 맛만은 보장 할 수 있다.

 

▲연리지가든에서만 먹을 수 있는 제주 재래 흑돼지

육지의 핑크색 돼지고기와는 달리 소고기인양 붉은 살색과 생각보다는 과하다 싶게 비계가 많아 처음 접하는 이라면 무슨 고기가 비계가 이렇게 많아? 하며 화를 낼 법도 하다. 그러나 불판 위의 고기가 익어 한입 베어 물면 비계에서 치즈 맛이 나는 듯이 고소한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꼬득꼬득한 비계의 씹는 맛과 퍽퍽하지 않은 살코기의 육즙에 다시금 놀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꼬득하고 고소한 비계 맛에 홀딱 반해 1인분을 추가로 더 시키고야 말았다.

 

김응두 대표는  참 바보스럽다. 4000평 너른 땅에 고작 40마리의 돼지를 기르고 넓은 땅의 풀을 치우기 위해 소를 기르고 남들이 다 피해가는 수지타산 맞지 않는 일을 하는 분!

돈도 되지 않는 일을 왜하느냐 물었더니 “ 좋아서”라는 답이 돌아 왔다. 우문현답이다. 남들이 하지 않으니 하는 것이고 같이 살아가는 동등한 생명체로 소중하게 길러내어 욕심내지 않고 적당하게 먹고 종 보존을 하여 보다 다양할 수 있게 하는 일. 그것이 김응두 대표가 하고 있는 일이지 싶다.

소년 같은 미소를 가득 담고 그의 너른 마당을 둘러보는 그의 모습이 아직도 가슴 가득 살아나 마치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동지를 만난 것만 같기도 하고 거친 길을 헤쳐 주는 선배를 만난 것 같아 든든해진다. 

▲연리지가든 김응두 대표와 김지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