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말, 중국은 문화대혁명(1965-1976)의 큰 질곡을 벗어나 마침내 덩샤오핑을 위시한 지도자들이 중국경제정책의 중심을 ‘개혁개방’으로 옮겼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 정부는 ‘중국의 경제 및 사회가 거대한 변화와 더불어 개혁개방이 지향하는 ‘역사적 성취’를 거두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들도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점차 두려움의 상대로 보고 있다. 더욱이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로 가까운 우리는 그것을 더욱 피부로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가 90년대 중반 베이징 유학과 대사관 근무를 하던 시기 ‘중국은 우리보다 20-30년 뒤졌다.’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2007년 중국을 떠나올 때는 ‘10-5년 뒤졌지만 어떤 부문은 우리보다 앞섰다.’라고 자조 섞인 말을 해야 했다. 지금은? 필자는 귀국한 후에도 《중국국가통계연감》을 계속 주시하면서 이런 의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고자 했다. 그리고 특히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경제 및 사회에서 어떠한 발전을 이뤄냈는지 알고 싶어 그 내용을 보고 분석해 봤다. 

 

우선 결론을 말하자면, 중국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경제의 각종 구조도 최적화되었다. 기초산업이 튼튼해졌고 주민들의 소득도 늘어났다. 하지만 그간 겪어 보지 못한 수두룩한 난제들이 많이 도사리고 있다. 이제부터 중국의 경제 및 사회의 발전과 현주소를 좀 더 자세한 내용으로 정리해본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면서 국제적인 영향력 커져

   

중국의 경제발전을 총체적으로 평가해 보면, 2017년 중국 국내 총생산액(불변가격)이 1978년에 비해 33.5배로 늘었고, 연평균 9.5%씩 성장하여 평균 8년마다 배로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세계경제의 연평균 2.9% 성장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서 중등소득국가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2017년 1인당 국내생산총액이 5만9,660위안(1위안 162원, 1달러 6.9위안)으로 가격요소를 뺀 경우 1978년에 비해 22.8배 성장하고 연평균 8.5%씩 높아졌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200달러에 미치지 못했으나 2016년에 8,250달러로 높아졌고, IMF에 따르면 2018년 9,633달러로  중등소득국가의 평균치를 웃도는 수준이 된 것이다. 

 

경제발전의 출발이 1980년도에야 시작되었고 인구도 많은 상황에서도 이러한 거대한 발전을 이뤄낸 것에 대해 사람들은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외적인 성장은 커졌지만, 질적인 면에서 낙후된 모습은 여전히 남아있다.     

 

재정부문의 확대가 대단하였다. 1978년 국가의 일반예산수입이 1132억 위안이던 것이 7년이 지난 1985년에 거의 배로 높아져 2005억 위안, 1993년 또다시 배나 많아진 4349억 위안이 되었다. 1999년 1조 위안으로 오르더니 2007년 2조 위안, 2011년 10조 위안, 2017년 17조 256억 위안으로 높아졌다. 1979-2017년간 연평균 13.8%씩 늘어난 셈이다. 이처럼 늘어난 재정은 그간의 경제발전·민생개선보장·경제구조조정·효과적인 경제위기방지 등에서 든든한 뒷받침이 되었다. 

 

세계경제에 대하여 공헌하였다. 1978년 경제 총규모는 세계 11위에 불과했으나 2000년에 이탈리아를 넘어 6위가 되었다. 2007년 독일을 추월하고, 2010년 마침내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되었다. 2017년 중국 국내 총생산액이 12조 3천억 달러로서 세계 총 경제총량의 15%를 차지했는데 1978년에 비해 13%포인트를 높인 것이다. 최근에 중국이 세계 경제성장에 준 공헌도가 30%를 넘었다. 과연 언제쯤 미국을 추월할까? 세계경제학자들이 초미의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 2030년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2025년을 넘기지 않을 거란 예측을 많이 하고 있다.  

 

외환 부족국가에서 외환 비축대국으로 전환하였다. 1978년 외화보유액은 1.67억 달러에 불과한 세계 38위였다. 개방형 경제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중국 경상항목의 잉여가 계속 누적되어 2006년 1조 달러를 돌파하여 일본을 넘어 세계 1위가 되었고, 2017년 말 현재 외화보유액은 3조 1399억 달러로 여전히 세계 1위이다. 그러나 외환의 과다보유에 따른 부담은 여전히 중국 재정운용상 큰 고민거리이다.  

 

경제구조 개혁, 발전 조정능력과 지속성 현저히 향상  

 

산업구조의 조정에 큰 변화가 있었다. 주요산업이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농업은 단일재배업 위주의 전통농업을 농·임·목·어업으로 전면적으로 발전하는 현대농업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공업구조는 중·고급수준으로 발전시켜나갔다. 2017년 고급기술제조업과 장비제조업의 부가가치가 ‘규모이상공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12.7%와 32.7%를 차지했다. 2005년에 비해 각각 0.9%포인트 및 4%포인트 높아졌다. 

(※규모이상공업 : 1998-2011 전국 국유기업 및 연간운영비 수입 500만 위안 이상의 비국유공업기업, 2007-2010 연간운영비 수입 500만 위안 이상의 공업기업. 2011년 연간운영비 수입 2000만 위안 이상의 공업기업)  

  

서비스업의 빠른 성장은 경제성장의 새로운 견인차가 되었다. 2012년 3차 산업 부가가치가 국내 총생산액의 비중에서 처음으로 2차 산업보다 많아지면서 수위 자리를 차지했다. 2017년 3차 산업은 51.6%로 1978년에 비해 27%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또한 중국경제에 대한 공헌도도 1978년에 비해 30.4%포인트나 높아진 58.8%가 되었다. 하지만 농촌과 농업의 상대적 낙후는 향후 사회주의 국가라는 명분을 잃게 하는 중대한 문제가 되어왔고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큰 과제이다.  

 

수급구조의 개선이 이뤄졌다. 최근 내수가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다. 2017년도 내수가 경제성장에 주는 공헌도가 90.9%에 이르게 되었다. 소비가 갈수록 경제성장의 ‘안정제’가 되었다. 2013-2017년 최종소비지출이 경제성장에 주는 공헌도가 56.2%에 이르러 자본총액에 비해 12.4%포인트 높았다. 

 

동·중·서부 지역구조가 많이 개선되었다. 개혁개방 초기 동부지역은 개혁개방의 선행지역이며 전진지대였다. 2000년에 이르러 동부지역 생산총액의 비중이 53.5%가 되었는데 1978년에 비해 10%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2001-2017년 중·서부지역 생산총액 연평균 실제성장이 각각 11.1%, 11.6%였다. 동부에 비해 0.1%포인트, 0.6%포인트 높았다. 최근 몇 년 경·진·기(베이징·텐진·허베이성)의 공동발전과 장강(長江)경제발전벨트의 발전을 적극 추진하여 경제성장을 가속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부와 중서부 간의 불균형은 여전하고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다.

 

농촌경제체제와 호구제도의 개혁 등 일련의 정책을 추진한 결과 도시화의 속도가 현저하게 빨라졌다. 2017년 말 중국 상주인구의 도시화 비율이 58.0%에 이르러 1978년에 비해 40.6%포인트 상승하였는데 연평균 1%포인트씩 늘어난 것이다. ‘사람중심의 신형도시화’도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2017년 말 중국 호구인구 도시화비율은 42.35%로 상주인구 도시화비율의 격차가 16.17%포인트로 줄어들었다. 도농 간 소득격차도 꾸준히 줄었는데 2010년 이후 농촌주민 실제소득의 성장속도가 8년 연속 도시지역보다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격차가 현저히 감소되지는 않고 있다. 

 

 

기초산업과 기초시설의 발전과 공급능력 충족되고 풍부해져

 

농업 기초지위가 강화되었다. 2017년 중국 식량생산량은 6억 톤 이상이 되어 1978년에 비해 배로 늘었다. 최근에 이르러 곡물, 육류, 땅콩, 찻잎 생산량이 세계 1위를 차지하였고, 유채는 세계 2위, 사탕수수는 세계 3위가 되었다. 

  

공업생산능력을 보자. 2017년 강재(鋼材)생산량이 10.5억 톤으로 1978년에 비해 46.5배로 늘었고, 시멘트는 23.4억 톤으로 34.8배, 자동차는 2902만 대로 193.8배 늘었다. 핸드폰 및 미니컴퓨터는 무(無)에서 시작하여 2017년 생산량이 각각 18.9억 대와 3.1억 대가 생산되었다. 최근에 이르러 중국 공업경제는 ‘제조업 강국’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어 세계 여러 나라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교통운수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2017년 말 철도노선은 12.7만km로 1.5배 늘었는데, 이중 고속철로는 2.5만km에 달하여 전 세계 고속철로의 60% 이상을 차지하였다. 이로써 종횡으로 잇는 고속철로 네트워크를 기본적으로 형성하게 되었다. 2017년 말 도로는 477만km로 4.4배 늘었고 이중 고속도로는 13.6만km나 되었다. 사통팔달의 교통체계가 이뤄진 것이다.  

 

우편 및 통신업의 발전이 매우 컸다. 2017년 말, 전국 우정(郵政) 영업네트워크가 27.8만개로 4.6배 성장하였다. 우편도로가 938.5만km로 93.0% 늘었다. 근년에 이르러 ‘네트워크 강국전략’을 추진하는 가운데 고속·이동·안전·무제한을 지향하는 신세대 정보기초시설의 건설이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2017년 말 전국 이동통신전화 보급률이 102.5대/100인으로 늘었다. 전 세계 최대의 모바일 광대역 사용자가 11.3억 명이나 되고, 케이블 라인의 총 길이도 3747만km에 이르렀다.

 

에너지 생산능력이 제고되었다. 2017년 에너지 총생산량은 35.6억 톤(표준 석탄)으로 4.7배, 연평균 4.6%씩 늘었다. 2017년 말 전국 발전기 용량은 17.8억kw였다. 30.1배 늘어난 것이다. 수력·풍력·태양광 에너지발전과 원자력 발전 규모가 세계 1위가 되어 전 세계 비화석(非化石)에너지의 리더가 되었다. 서부의 가스에너지를 동부로 옮기고 동부의 전기에너지를 서부로 옮기는 등 에너지 수송 대동맥 건설에서 거대한 성취를 거두고 동부지역의 경제발전과 에너지 공급의 모순을 크게 완화되고 해소되었다. 

 

대외경제의 발전이 커진 가운데 개방의 폭이 더욱 확대

 

무역규모가 크게 신장되었다. 1978년 화물수출입총액이 206억 달러로 세계 29위에 불과하였다. 2001년 12월 정식으로 WTO에 가입한 후 대외무역총액이 매우 빠르게 신장하여 2017년 화물수출입총액이 4조 1천억 달러로 197.9배 늘었다. 연평균 14.5%씩 늘어나 세계 1위가 되었다. 서비스업 수출입 총액은 6957억 달러로 1982년보다 147배 늘었고 4년 연속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무역구조에서 많은 개선이 있었다. 수출상품의 초급상품 비중이 1980년 50.3%이던 것이 2017년에 5.2%로 낮아졌고 공업제품의 비중이 49.7%에서 94.8%로 상승하였다. 무역방식도 단계적으로 변화되었다. 1981년 화물수출입총액 중 일반무역이 93.5%였다. 대외개방의 폭을 강화함에 따라 대규모적인 가공무역이 동남 연해지역에서 신속히 발전하였다. 1998년 수출입총액 중 일반무역의 비중이 36.4%였고, 가공무역은 53.4%로 높아졌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일반무역이 다시 주류를 차지하였다. 2017년 수출입 총액 중 일반무역의 비중이 56.3%로 오르고 가공무역은 29.0%로 낮아졌다.  

 

외국인의 중국투자가 급증하였다. 2017년 중국이 실제 사용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1310억 달러로 1984년에 비해 93.1배로 연평균 14.7%씩 늘었다. 1979-2017년 외국인이 중국에 투자한 누적 총액은 1조 8966억 달러로 외국인 직접투자가 제일 많은 발전도상국이 되었다. 과거에는 제조업이 외국인 투자영역이었으나 근년에는 서비스업이 투자의 새로운 인기항목이 되었다. 2017년 서비스업의 외자유치 비중이 72.8%로 높아졌다.

 

주민들의 생활이 중류생활 수준으로 향상

 

취업구조가 개선되었다. 1978-2017년 중국 취업인구는 4억 152만 명에서 7억 7640만 명으로 늘었다. 연평균 961만 명씩 늘어난 것이다. 도시지역의 실업률이 장기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였고 도시조사실업률이 전 세계 평균 수준보다 낮았다. 농촌의 풍부한 잉여 노동력이 2차 및 3차 산업으로 옮겨지고 3차 산업이 점차 취업을 흡수하는 주요 채널이 되었다. 2017년 말 2차 및 3차 취업인구는 각각 28.1% 및 44.9%를 차지했다. 1978년에 비해 각각 10.8%포인트 및 32.7%포인트 제고된 것이다.

  

주민소득이 증가하였다. 1978년 주민 1인당 평균소득이 171위안에 불과했다. 2009년 10,977위안으로 치솟고 2014년에 2만 위안을 관문을 돌파하여 20,167위안이 되어 이제 3만 위안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2017년 1인당 평균소득은 2만5,974위안으로 가격요인을 뺀 경우 1978년에 비해 실제 성장이 22.8배로 연평균 8.5%씩 늘었다. 재산소득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다양화되어 2017년 주민 1인당 재산 순수입이 전체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1%에 달했다.  

 

주민생활조건을 보자. 2017년 주민 1인당 소비지출은 18,322위안으로 가격요인을 제외하고 1978년에 비해 18.0배로서 연평균 7.8%씩 높아졌다. 소비수준이 온포형에서 소강형으로 전환되었다. 2017년 전국 엥겔계수가 29.3%로 34.6%포인트 줄어들었다. 주거조건이 현저히 개선되었다. 2017년 도시주민·농촌주민 1인당 평균 주택건축면적이 1978년에 비해 각각 30.2㎡와 38.6㎡ 늘었다. 자동차가 가가호호에 들어갔다. 2017년 도시주민·농촌주민 평균 100호당 자가용 보유수량이 각각 37.5대와 19.3대로 늘었다.   

  

높은 성과가 있었지만 새로이 나타난 문제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중국국가통계연감》을 통해 중국 개혁개방 이래의 중국경제 및 사회의 모습을 보면 중국은 확실히 40년의 역정을 거치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역사적 성취를 거두었고 전대미문의 변혁을 이뤄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중국은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지금의 중국이 존재할 수 없었음을 증명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이 14억 명의 국민들을 이끌고 이만한 성과를 낸 것은 가히 경탄할만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은 당면한 여러 가지 난제를 풀어가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중국의 경제는 이미 고도로 발전해왔던 자본주의 국가나 다름없는 과정을 거치고 또 그에 따르는 난제들을 떠안게 된 것이다. 즉, 과거 자본주의 국가들이 겪었던 문제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경제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빈부격차 문제는 가장 큰 문제다. 이를 두고 중국 일부 빈곤층 사람들은 ‘왜 개혁개방을 했지?’ 하며 반발하고 있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또 해결할 수도 없는 동·중·서부지역 간 불균형, 여전히 크게 벌어져 있는 도농격차 문제도 풀어나가야 할 큰 과제다. 또한 첨예하게 대립이 격화되어가는 노사문제, 날로 심각해진 환경오염, 갈수록 규모가 커진 당원과 관료들의 부정부패 등등이 그들의 앞을 막고 있다. 특히,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라 표출될 수밖에 없는 민주화의 요구도 점차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주변 국가들과의 영토 분쟁, 미국과의 무역 전쟁 등 국외문제도 많다. 특히 야심차게 추진 중인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상징성도 있고 성과도 보이는 것 같지만, 중국과 연결되는 나라들의 정치와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등 마찰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부작용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이라는 목표는 상기 여러 문제 즉, 중국이 그간 겪어보지 못한 새로이 나타나고 복잡하게 얽혀진 이들 난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하고 해결하는지에 따라 그 성패가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필진 소개>

정문섭 필자는

농식품부 공무원으로 재직 시 3년간의 대만 유학과 8년간의 주중한국대사관 참사관 생활 등 총 11년간 중국에서 주재한 중국 전문가이다. 정문섭 박사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능률협회 중국비즈니스 전문교수직을 7년간 맡기도 했다.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중국농업대학에서 관리학 박사를 취득했다. 국내에서는 농업인재개발원 원장과 한국농업연수원 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