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 중 황희 정승과 농부의 일화가 있다. 황희 정승이 농부에게 “누런 소가 일을 더 잘하오? 검은 소가 일을 더 잘하오?” 하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그 일화에 등장했던 검은 소 ‘흑우’는 생소하기는 하지만 토종 한우의 하나로 몸 전체가 검은 털로 덮여 있으며 현재 제주도에 가장 많이 남아 있다.

 

고대 신화나 고전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소는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며 신성한 동물로 여겨진다. 제주도에는 제주 흑돼지, 제주 재래마, 제주 흑우를 일컬어 제주도의 검은 보물이라 한다. 제주방언으로 ‘검은쉐’인 ‘흑우’ 역시 아주 귀하게 관리되었던 가축으로 그 옛날 제주에 기근이 들어 진상품을 면제 받아도 흑우, 감귤, 말 만큼은 꼭 진상해야 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제주흑우 고기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삼명일(임금생일, 정월초하루, 동지)에 정규 진상품으로 공출 기록이 있으며, 나라의 중요한 제사를 지내는 제향품으로 쓰일 만큼 매우 귀한 소로 대접을 받았다. 실제로 흑우를 사육한 기록은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도내 지역을 순회하면서 제작한 탐라순력도에 제주흑우 763마리가 사육된 것으로 기록되었을 만큼 우수한 품종으로 인정받았다. 

 

제주특별자치도 축산진흥원에서 ‘92~’93년 제주특별자치도 전역을 수소문해 늙은 제주흑우(연령 15~20세 이상) 10마리를 수집, 사육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당시에는 제주흑우 사육두수가 난지농업연구소를 포함해 23마리에 불과하던 것이 현재는 축산진흥원 사육 116마리를 포함해 도 전역에 44농가 470여 마리로 증식되는 성과를 올렸다. 한편 제주흑우가 2004년 동물유전자원 관련 국제기구인 유엔 산하 국제식량농업기구(FAO)에 보고한 국가보고서에 우리나라 한우품종 4종(한우, 칡소, 흑우, 제주흑우)중 한 계통으로 등록 신청되었다.  또 2013년 6월에 문화재청에서 흑우의 기원과 역사, 혈통의 고유성 등을 검토해 최종 심의한 결과 제주흑우는 천연기념물로 확정되었다.

 

그런데 흑우는 왜 멸종 직전까지 내몰리게 된 걸까? 여기저기 자료들을 뒤지고 검색하다보니 일제 강점기 수탈의 결과물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조선총독부 및 각종 통계자료에 의하면 개항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에까지 반출된 한우가 150만 마리 이상이었고, 죽어서 가죽으로 반출 된 소는 600만 마리 이상이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소는 쌀, 콩 다음으로 중요한 수탈의 대상이었다고 하니 이 또한 역사적 비극이다.

제주흑우는 1924년과 1925년 암소, 수소 201두가 일본으로 수탈되어 간 기록이 있으며, 1928년 일본은 일본 흑우 ‘와규’의 원조인 ‘미시마’ 소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오늘날 일본 문화재청은 “미시마 소는 무로마치시대에(1336-1573) 조선반도에서 도래하여 현재까지 혼혈(교잡) 없이 사육되어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와규로 일컬어지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1924년과 1925년 수탈된 흑우와 1928년 미시마소 천연기념물 지정이 오버랩 되는 것이 더 큰 궁금증을 자아내고 말았다.

 

수탈로 인한 소실과 함께 1938년 일본은 한우표준법을 제정하고 일본 소는 흑색을 표준으로 하고 한국 소는 적갈색을 표준으로 한다는 모색통일 심사 표준법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법은 우리 소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무서운 법이었다.

 

제주흑우가 멸종 위기로 가고 있을 1970년대 즈음의 경운기의 보급은 일 잘하는 소로 남아 겨우 명맥을 이어가던 흑우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한우 품종 중 제일 왜소한 제주흑우는 작지만 제주의 거친 환경에 잘 적응하고 질병에도 강해서 제주의 거친 땅을 일구는 일소로서도 아주 적합했었는데, 경운기가 보급되면서부터는 “땅 천 평과도 안 바꿨다”는 제주흑우는 누렁소에 비해서 발육이 더디었기에 농가에 별 소득이 되지 않아 더욱 멸종으로의 길을 가게 되었다.

 

조선의 질곡의 역사와 함께한 제주흑우는 임금이 사랑한 임금의 소였지만 그러했기에 한편으로는 을의 입장인 백성에게는 눈물의 소이기도 했다. 나라에 필히 진상해야 하는 귀한 소라서 잃어버릴 경우 아내나 딸을 바쳐 변상을 해야 할 정도였다니 말이다.

 

▲제주흑우로 만든 메밀놈뼈국

이쯤 되니 슬슬 흑우의 맛이 궁금해진다. 임금이 사랑하고 국가의 주요한 행사에 쓰일 정도고,  흉년과 가뭄이 들어도 진상품에서 제외되지 않았던 제주흑우! 제주에서 제주흑우를 취급하는 음식점이 세 군데가 있는데, 제주축협에서 운영하는 ’제주한우명품관‘과 드라이에이징을 한 흑우를 파는 ’흑소랑‘, 그리고 흑우만을 취급하는 ’검은 쇠 몰고 오는’ 등이 있다. 가난한 주머니 사정 덕에 세 곳 모두 가볼 수는 없어 제주시의 한 식당을 선택해 흑우 맛을 보았다. 이곳의 흑우는 암소는 30일 숫소는 25일 정도로 냉장 숙성을 해서 흑우 고유의 맛을 내려고 노력하였고, 메뉴개발에도 정성을 기울여 2016년 서울국제그랑프리대회에서 메밀놈삐국과 흑우 떡갈비로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제주흑우로 만든 떡갈비

흑우의 겉면만 살짝 익힌 흑우 타다키는 유자드레싱과 함께 에피타이저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흑우 냉채를 거쳐 흑우고로케, 흑우떡갈비의 순서로 음식이 서빙 되었고, 다양한 부위를 맛보고자 추가 주문한 흑우 모둠이 등장하니 위장의 음식을 모두 한쪽으로 몰아 흑우를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날 것의 흑우는 찰진 식감이 입안을 감칠맛 있게 맴돌았는데 차돌박이와 업진살, 등심, 안심 등의 부위는 각각 고기 부위별로 씹는 촉감, 향, 육즙 등이 그 맛을 달리하며 나를 즐겁게 괴롭혔다. 흑우는 일반 한우에 비해 조금 질기다 싶었으나 흑우만의 고소하고 감칠 맛도는 풍미는 어느 한우가 따라오겠냐 싶었다.

 

흑우의 특성상 메뉴의 가격이 조금 높았지만 날것의 흑우와 익힌 흑우 모두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어 그만한 가격을 지불할 만 했다. 흑우의 감칠맛과 입안에서 씹히는 식감이야말로 말해 무엇 하겠느냐마는 코스로 나오는 음식 중 메밀놈삐국은 한겨울 뜨끈하게 날 수 있는 보양 음식과도 같았다. ‘놈삐‘는 제주방언으로 ‘무’를 말하는데 소고기 사골 뭇국에 메밀가루를 넣어 걸쭉하고도 진한 사골 뭇국을 한 모금 들이키니 한겨울 독한 감기마저 달아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