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셰프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제 외국인 셰프들과 그들이 만드는 요리, 그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한국인 외식문화의 일부분이 되었다. 한국인들은 그들의 요리를 즐기기만 하면 될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도 희로애락이 없을 수 없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이방인의 밥상 스토리를 차례로 소개한다. 그 여섯 번째로 이탈리아 셰프 에밀리오 브로소(Emilio Broso)를 만났다. <편집자 주>

 

그의 오른쪽 팔뚝에는 머리 하나에 다리가 셋 달린 삼각형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트리나크리아(trinacria)라고 불리는 그 문신은 이탈리아의 남쪽 섬 시칠리아를 상징한다. 시칠리아의 깃발에도 트리나크리아가 그려져 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시칠리아가 트리나크리아로 불렸다고 한다. 세계지도를 보면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가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인 삼각형 모양의 시칠리아에 걸려 넘어질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시칠리아가 에밀리오의 고향이다.

 

▲트리나크리아(trinacria) ⓒ밥상머리뉴스

 

그곳에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요리를 보고 배우며 자랐다. 감자를 깎고 설거지도 하면서 아버지를 도왔다. 81년생인 그는 한국 나이로 17살 때쯤 잠시 다른 길로 갈 뻔했으나, 결국은 요리가 자기에게 맞는다는 것을 깨닫고 요리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약 25년 동안 주방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2006년에 그는 호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헤드셰프로 일하면서 식당 경영과 마케팅을 공부했다. 그러던 중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가 있던 지금의 한국인 부인 신혜영 씨를 만났다. 호주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라였지만, 뭔가 지겹다는 느낌도 들었다. 인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마침내 두 사람은 작년 7월 한국으로 왔다. 7살과 21개월 된 두 딸과 함께.

 

에밀리오 부부는 작년 11월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옆에 ‘살롱드 쥬(Salon de Joo)’라는 이탈리안 식당을 열었다. 기존에 다른 사람이 운영하던 가게를 인수하면서 이름은 그대로 쓰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의 역사성과 마케팅 효과를 그대로 살리고 싶어서.

  

- 장사는 잘되는가?

 

“요즘 다들 식당 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우리는 잘 되는 편이다. 일주일 내내 문을 열고 있다. 점심때도 오픈한다. 쉴 틈이 없다.”

 

▲살롱드 쥬의 내부사진 ⓒ밥상머리뉴스

 

- 왜 그렇게 잘 되는가? 소위 오픈 효과인가?

 

“글쎄. 사실 우리 가게 근처에 이탈리안 식당이 없다. 그리고 외국인이 직접 셰프로서 요리하는 곳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동네는 이태원이나 홍대와 같이 외국인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이다. 그리고 외국인 유동인구도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현재 손님들은 99%가 한국인이다. 요즘에 와서야 소문이 조금씩 나면서 외국인들이 멀리서 찾아오기도 한다. 장사가 잘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만든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하하.”

 

주변에 외국인이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역으로 마케팅에 도움을 줬는지도 모른다. 가게 근처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보고, 이틀 안에는 가게를 들러주기 때문이다. 

 

파케리 타투푸카포나타는 꼭 먹어봐야 할 메뉴

 

- 이 식당이 가장 자랑하는 메뉴는 무엇인가?

 

“우리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는 ‘파케리 타투푸(paccheri tartufo)’라는 요리다. 파케리는 파스타 종류 중 하나로, 크기가 크며 튜브 모양이다. 안에 구멍이 있다. 우리는 시칠리아에서 핸드메이드로 만든 유기농 파스타를 쓴다. 그리고 타투푸는 영어의 트러플(truffle)에 해당하는데, 송로버섯을 말한다. 이 송로버섯 오일과 크림으로 소스를 만들고 그 위에 수란(水卵)을 얹어 만든 음식이다. 풍미가 뛰어나고 고소함이 입맛을 당긴다. 이 메뉴는 내 고향 시칠리아의 식재료와 나의 요리 경험, 그리고 고객과의 소통 속에서 탄생한 나의 인생 메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중적인 음식은 파스타와 피자다. 그런데 이 식당은 파스타가 주된 메뉴이고, 실제 팔리는 비율도 파스타와 피자가 5대 1가량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꼭 알리고 싶은 메뉴가 있다고 했다.

 

▲파케리 타투푸(왼쪽)와 카포나타(오른쪽) ⓒ밥상머리뉴스

 

“카포나타(caponata)라는 음식을 꼭 권하고 싶다. 카포나타도 시칠리아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가지, 호박, 양파, 피망과 같은 채소를 튀긴 후에 토마토소스를 뿌려 만든다. 생선이나 고기 요리에도 잘 어울린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짠’류라고 할까. 드셔보신 분들은 꼭 다시 와서 주문한다. 어떤 분은 짜장면의 짜장 소스처럼 밥에 비벼 먹고 싶다고도 하신다.”

 

지금까지 에밀리오 셰프가 자랑한 메뉴로 봐서 그의 요리는 시칠리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식당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외국인 셰프들은 자기 나라 음식에 자부심이 강하고 전통 요리를 고집한다. 에밀리오도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고 다음 질문을 한 순간 그의 입에서 의외의 답이 나왔다.

 

- 한국인의 입맛이 이탈리아인과 다를 텐데 어떻게 대응하는가?

 

“나는 전통을 고집하지 않는다. 나의 뿌리는 시칠리아일지라도 한국에 와서 식당을 하려면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정통 이탈리안 음식에 비해 한국인이 좋아하는 크림을 더 사용한다든가, 소금의 양을 줄인다든가 해서 맛을 조절한다. 나는 내가 만들고 있는 음식이 100%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이탈리아 전통음식만을 고집한다면 아마도 6개월 안에 가게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셰프들은 퓨전을 싫어하지만, 나는 퓨전을 지향한다. 나는 셰프이기도 하지만 사업가여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 둘 사이의 조화로운 지점을 잘 찾아야 한다.” 

 

▲살롱드 쥬 앞에서 ⓒ밥상머리뉴스

 

  요리와 사업가의 조화로운 중간 지점을 잘 찾아야

 

- 그렇다면 이탈리아나 외국인 손님들이 오면?

 

“이탈리아 손님이 오면 메뉴판의 음식을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인이나 다른 외국인 손님이 오면 별도로 그들의 입맛에 맞게끔 요리를 한다. 메뉴에 없는 음식을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경우도 많다.” 

  

그에게서는 딱딱하고 고루한 분위기를 느낄 수가 없다. 아마도 그것은 자기 요리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 레시피나 메뉴 개발은 어떻게 하는가?

 

“레시피는 좋은 식재료와 나의 경험, 그리고 고객들과의 소통 속에서 탄생한다. 그래서 우리 식당은 스페셜 즉석 메뉴가 많은 편이다. 특히 단골분들은 메뉴도 안 보고 그냥 셰프한테 맡기는 경우도 있다. 식재료나 메뉴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호박꽃을 식재료로 쓴 경우가 있었다. 시골에 계신 부인의 이모가 키우는 호박꽃에다 치즈와 민트, 레몬껍질을 넣고 튀겨서 즉흥 메뉴를 만들었는데 먹어본 손님들이 예약을 해놓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 식재료 조달은?

 

“우리가 사실 제일 신경을 쓰는 게 식재료다. 식재료가 신선해야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냉동 제품이다. 그래서 홍합과 같은 해산물은 근처 가락시장에 가서 직접 사 온다. 물론 배달업체에 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 기준에 안 맞으면 돌려보낸다.”

 

▲인터뷰 중인 에밀리오 브로소 셰프 ⓒ밥상머리뉴스

 

한국 음식도 건강식, 파김치와 홍어회무침 좋아해

 

- 이탈리아 음식을 비롯한 지중해 음식은 건강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등 지중해를 끼고 있는 나라들의 식재료에는 채소 종류도 다양하고 매우 신선하다. 그 나라 사람들의 냉장고 문을 열어보면 신선한 채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의 냉장고를 열어보면 팩이나 통조림으로 된 음식들이 들어있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신선한 재료가 몸에 더 좋고 맛도 좋다.”

 

- 한국 음식도 건강식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에 오래 살아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 경험상으로는 한국 음식도 건강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도 4계절이 있고, 철 따라 나오는 신선한 채소들이 많다. 또 김치라든가 발효문화도 가지고 있고. 그래서 한국인 중에 비만인 사람이 별로 없지 않은가. 다만 요즘 젊은 세대들의 식생활이 간편식이나 패스트푸드 음식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 한국 음식 중에 어떤 걸 좋아하는가?

 

“파김치를 좋아한다. 홍어회무침도 좋아하고. 파김치는 재료의 신선함과 매콤한 맛을 사랑한다. 이탈리아에는 파김치와 비슷한 음식이 없다. 물론 와이프를 처음 만났을 때는 파김치를 싫어했지만 지금 내 입맛은 바뀌었다. 홍어회는 삭히지 않은 것을 좋아한다. 삭힌 것은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포카차(이탈리아 빵)를 만들고 있는 에밀리오 브로소 셰프 ⓒ밥상머리뉴스

 

내 요리 철학은 단순함과 신선함을 통한 맛의 추구

 

- 당신만의 요리에 관한 철학은 무엇인가?

  

“음~ 단순함과 신선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거창하게 철학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내가 요리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단순함과 신선함이다. 나는 지금까지 고급 음식점과 집밥 음식점 등 다양하게 일해 봤지만 단순한 것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쁘게 장식하고 아름답게 요리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음식의 맛 그 자체에 충실하고 싶다.”

 

- 어떤 요리사가 좋은 요리사라고 생각하는가?

 

“좋은 요리사가 되려면 4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본다. 첫째 열심히 할 것. 둘째 요리에 헌신적일 것. 셋째 청결함을 중시할 것. 넷째 시스템을 갖출 것.”

 

- 꿈과 목표가 있다면?

 

“먼 장래의 꿈을 지금 말하고 싶지는 않다. 꿈이라기보다 단기 혹은 중기적인 목표를 말한다면 가게를 빨리 정비해놓고 유통 사업을 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계 셰프를 양성해야 한다.”

 

평생 요리사도 주방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는가 보다.

 

▲에밀리오 브로소 셰프와 그의 부인 신혜영씨 ⓒ밥상머리뉴스

 

<사진 및 정리: 백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