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은 전분을 함유한 곡식이나 감자류 등을 엿기름으로 삭혀서 고아 만든 식품이다. 조선시대에는 그 특유의 고소한 단맛 때문에 서민 간식으로 인기가 높았으며, 설탕이나 꿀 대신 음식 조리에 사용하는 조미료였다. 

 

엿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시간의 가열이 필요하다. 먼저 보리를 싹 틔운 후 말리고 가루를 낸 엿기름을 우려낸다. 그 우려낸 물과 고두밥을 섞어 50℃로 온도를 유지한다. 11 시간이 지난 후 밥알이 동동 뜨면 한 번 끓여 식힌다. 이것이 식혜이다. 그런 뒤 밥알을 모두 건져내고 걸쭉하게 될 때까지 끓이면 조청이 되고, 더 끓여서 되직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강엿이다. 

 

강엿을 식힌 후 다시 따뜻한 곳에서 녹여 물렁물렁할 때 수백 번 이상 늘이면 색깔이 갈색에서 흰색으로 변하며, 엿 성질도 부드러워진다. 이것을 가위로 잘라 굳히면 흰엿이 된다. 이 엿에 깨를 바르면 깨엿이 되고, 그밖에 콩 등을 넣어 다양한 엿을 만든다. 행상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엿을 장시나 별신제 등 큰 행사에 갖고 나와 사람들에게 팔았다. 

 

엿은 향토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지역색이 깃들어 있다. 울릉도 호박엿, 강원도의 황골엿, 충청도의 무엿, 전라도의 고구마엿, 닭고기나 꿩고기를 넣어서 만든 제주도의 닭엿 또는 꿩엿이 유명하다. 

 

‘엿’ 하면 엿장수 풍경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곳에 좌판을 벌여놓고 엿을 파는 사람도 있었고, 엿목판을 들고 다니며 행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엿장수는 큰 가위로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엿을 사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 가위로 엿을 떼어내기도 했고, 가위 소리로 사람들을 모으기도 했다. 

 

1909년 일본인이 쓴 ‘조선만화’에는 당시 엿장수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엿 판매, 커다란 갓을 쓰고 엿 상자를 앞에 걸치고, 인간의 목도 벨 것 같은 가위를 찰칵찰칵 하면서 ‘엿, 엿, 엿 사려’ 하고 외치면서 큰길을 걸어 다닌다. 상자 속에는 흰색과 검은색 두 가지 색깔의 엿이 들어 있다. 흰 것은 보통 엿, 검은 것은 대추가 들어 있는 엿으로 한 상자에 2관(貫)(7.5kg)이 들어 있다. 하루 걸으면 전부 팔린다. 벌이는 1관을 1원에 사서 1원 50전에 파니까, 2관을 팔면 1원의 순이익이 남는다. 한 끼 식사가 5전인 한인의 생활에서 엿과 같이 달콤한 일이다. 메밀가루가 바람에 날린다.』

 

여기에 등장하는 엿장수는 엿 만드는 집에 가서 도매로 사다가 소매로 파는 사람이다. 볶은 메밀가루를 고물로 사용한 대추엿과 보통 엿 두 가지를 파는데, 2관을 팔면 외식을 20번 할 수 있는 1원의 순익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림 <엿 만들기>는 강엿을 늘여 모양을 만드는 모습을 그렸다. 세 남자는 가족으로 보인다. 아버지와 장가간 아들은 상투 튼 머리에 띠를 두르고 바지에는 행전(行纏)을 했다. 둘이 강엿을 늘여서 가래엿을 만들고 있다. 늘인 엿을 가위로 잘라 팔기 좋게 적당한 크기로 자를 것이다. 머리를 땋은 총각 아들은 엿을 팔기 위해 가지런히 정리하는 듯하다. 엿을 늘이고 있는 2명의 사내는 흐르는 땀을 막아줄 뜀받이 끈을 머리에 두르고 있고, 엿이 완성되면 흰엿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기 위해 가위도 준비되어 있다. 

 

<엿 만들기>는 19세기말 개항장에서 활동했던 직업화가 기산 김준근의 그림이다. 김준근 풍속화 속 인물은 튀어나온 넓은 이마, 눈 주위의 검은 달무리, 갈고리 코 등이 특징이다. 또한 의복은 명암을 도식화하여 표현한 이중윤곽선 묘법을 이용해 묘사했다. 

<자료협조: 한식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