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5월, 늘 이맘때가 되면 제주의 푸른 바다와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진다. 그래서일까? 늦봄에 마시는 제주의 술은 육지에서 마실 때 보다 제주 섬에서 마실 때가 훨씬 맛이 좋다. 

 

술은 세계 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서나 마실 수 있다. 우리나라도 방방곡곡 지역의 술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섬은 그 특색이 더욱 뚜렷하다. 그중 제주의 술을 마시러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낮에는 햇볕이 가득해 여행하기 좋은 요즘에 제주의 푸른 바다를 보며 제주에서만 만드는 술 한 잔을 시원하게 마시기 위해서다. 

 

제주도는 바람과 돌이 많은 데다 화산토양이 넓게 분포하고 있고 물도 귀한 환경이라 쌀농사를 짓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하기에 제주의 술은 쌀을 주원료로 하기보다는, 밭곡식인 '차조'의 제주 방언인 '오메기'를 원료로 하여 술을 빚거나, 먹다 남은 보리밥에 누룩을 넣어 발효해 '쉰다리'로 만들어 마셨다. 제주도를 설명하는 말 중에 “당오백 절오백의 섬”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신도 많고 절도 많다'라는 말인데, 예전 제주도를 지배했던 토속신앙과 무속신앙의 영향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많은 절과 신당에서 제를 지낼 때 쓰던 술이 '고소리술'과 '오메기술'이다.

 

그 중 오메기술은 차조를 깨끗이 씻어 불리고 가루 내어 ‘구멍떡’으로 삶아 뜨거울 때 으깨어 식혀 누룩을 섞어 낮은 온도에서 발효시켜 만든 술이다. 오메기술은 1990년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이 되었고, 공식명칭은 ‘성읍민속마을 오메기술’이다. 시어머니로부터 오메기술 제조법을 전수받은 김을정 씨가 기능보유자이고, 그의 딸인 강경순 씨가 2010년 전수 조교로 지정되었고, 2015년에 식품명인 68호로 지정되었다. 성읍민속마을 오메기술 전수관을 운영 중이다.  

 

오메기술은 차조 특유의 향을 지닌 탁주로 성읍민속마을에서 맛볼 수 있다. 오메기술을 증류하며 만든 소주를 '고소리술'이라 하는데 소주를 내릴 때 사용하는 증류기인 소줏고리의 제주방언인 '고소리'에서 이름을 따왔다. 고소리술 역시 1995년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소줏고리의 제주 방언인 '고소리'

 

전통적 제조방식의 술을 맛보고 싶다면 성읍민속마을에 가야 하겠지만, 전통적 방법에 현대적 생산 방식을 접목시켜 또 다른 맛의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맛보고 싶다면 ‘제주샘주’에서 맛볼 수 있다. 제주샘주가 주류면허를 취득한 것이 2007년이니, 육지에서 제주술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성읍민속마을에서는 제법 시간이 걸리는 거리인 제주 애월의 청량한 바닷가 근처에 제주의 맛을 가득 담은 술을 양조하는 제주샘주(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1997-1)가 있다. 이곳은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이 되어 제주의 술을 직접 체험하고 맛볼 수 있다. 찾아가는 양조장답게 양조장 주변을 고소리술과 고소리술 조형물과 분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 등으로 예쁘게 꾸며 놓았고, 한켠에는 작은 박물관도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주샘주의 술은 계약 재배한 쌀과 좁쌀을 술의 원재료로 쓴다. 현재 좁쌀의 가격이 상승해 좁쌀의 비율을 줄이고 제주조릿대를 넣어 술을 빚었는데, 이를 계기로 술맛이 훨씬 부드럽고 깔끔해지게 되는 계기가 되어 제주샘주 고소리술의 전환점이 되었다. 맛을 보니 실제 4~5년 전에 맛보았던 술의 누룩 취와 드센 맛이 없어지고 깔끔하고 부드러운 술맛이었다. 

 

좁쌀 가격의 폭등으로 고소리술의 양조방법을 이리저리 연구해 제주조릿대를 넣은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온 셈이다. 그러나 이 또한 제주샘주의 김숙희 대표의 열정적인 연구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김숙희 대표는 누룩도 직접 띄워 술을 빚는데, 이는 시중의 누룩보다 4~5배 정도 높은 당화력을 지녀 적은 양의 누룩으로 술을 빚게 되어 누룩 냄새를 월등히 줄이게 되었고, 이는 젊은 층에 어필하여 전통주를 보다 젊게 알리게 되었다.

 

 

▲제주샘주에서 만든 술들

 

제주샘주의 고소리술은 조릿대를 넣은 맑은 술인 약주로 13도와 15도 2종류다. 또 증류주인 고소리술(29도, 40도)과 제주 한라산에서 자란 산양삼과 하수오, 구기자 등을 넣은 고급증류주(45도)인 ‘세우리’ 등 2종의 고도주가 있다. 술이 약한 사람과 젊은 층을 겨냥해 만든 니모메(11도)는 제주의 싱싱한 귤을 활용해 빚은 술이다. 

 

증류주인 ‘세우리’는 부추의 제주 방언인데, 처음 술을 연구할 당시 부추를 넣어 술을 빚은 것을 계기로 몸에 좋은 약재를 넣은 술의 이름을 ‘세우리’라고 짓게 되었다고 한다. ‘니모메’ 역시 ‘너의 마음에’라는 제주 방언으로 기존의 전통주의 이미지와는 달리 톡톡 튀는 세련된 패키지로 젊은 층의 마음에 들어가고자 하는 의미를 부여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김숙희 제주샘주 대표

 

제주샘주의 오메기술은 직접 띄운 누룩과 조릿대를 넣어 누룩 냄새를 줄이고 상쾌한 맛을 높였고, 차갑게 마시면 과일 향과 함께 부드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녹는 듯 독특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고사리 무침이나 전과 함께 먹으면 좋다. 또 고소리술은 신선한 곡물 향과 살짝 감도는 단맛이 술맛을 부드럽게 한다. 생선회, 해산물과 잘 어울리며 다양한 칵테일의 베이스로 활용할 수 있다.

 

제주의 푸른 밤, 일렁이는 파도, 그리고 은은한 달빛...바닷가에 혼자 앉아 술 한 잔 기울이니 그 옛날 이태백의 ‘월하독작’이라는 시 한 수가 생각난다. 

 

『술잔 들어 밝은 달을 모셔 오니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