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가을에 듣도 보도 못한 ‘천년약속’이라는 술 제조회사에서 필자가 근무하던 신문사로 보도자료를 하나 보내왔다. 내용은 미국에 수출계약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5년 11월에 부산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담의 공식 만찬주로 ‘천년약속’이 선정됐다는 소식도 들어왔다. 

 

그 후에 부산 기장에 있는 그 회사를 찾아가 대표이사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국내시장에서 유통되지도 않는 술을 어떻게 미국에 수출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했다.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같은 중소 주류제조업체가 기존의 국내 주류 유통채널에 진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국내시장을 포기하고 해외 수출부터 추진했습니다.”

 

해외에서 인정을 받으면 국내시장에서도 먹히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 그런 전략을 썼다는 것이다. 그 후 ‘천년약속’은 미국에 수출했다는 이유와 더불어 APEC 정상회담 만찬 건배주로 선정됐다는 이유로 세상에 알려져서, 한때는 국내 소비자들도 꽤 많이 마셨던 술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존재감이 미미한 술이 되고 말았다. 

 

현재는 대표적인 전통주 전문 제조업체로 자리매김한 ‘국순당’의 경우는 또 어떤가. 이 회사도 초기에는 기존의 주류유통 채널에 진입하지 못해 음식점에 무료로 메뉴판 등을 만들어주고 그 메뉴판에 ‘백세주’를 홍보하는 방식으로 ‘업소 마케팅’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중소 주류 제조업체들이 기존의 주류유통 채널에 진입할 수가 없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금력이다. 달리 말하면 대기업의 횡포다. 기존의 제조회사-도매상-소매상으로 이어지는 주류유통 채널의 경우 제조회사가 도매상에 술을 외상으로 넘기고 판매가 되면 대금을 받는 일종의 외상거래가 관행이었다. 대기업은 자금력이 있어서 얼마든지 이렇게 할 수 있지만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술을 만드는데 필요한 원·부자재 대금은 즉각 결제를 해야 하는데, 판매대금은 어느 세월에 회수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도매상들 입장에서도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이나 신생 주류업체의 주종을 취급해봐야 크게 돈이 되지도 않으니 취급 자체를 꺼리는 것이 원인이기도 했다. 여기에는 신생 주류가 성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존 주류 메이커들과 도매상들과의 카르텔도 작용했다. 그러니 대기업과 도매상들의 고리는 더욱더 단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특정주류도매업’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전통주나 소규모 주류제조사가 만든 술을 유통할 수 있게 했지만, 그 영향력은 기존의 유통채널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주류유통의 또 하나 문제점으로 주류도매업 허가제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 전산 및 회계시스템이 미비한 상황에서 탄생한 주류면허제도는 무자료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촘촘한 조세관련 전산시스템이 구축된 현시점에서는 긍정적 기능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불공정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출고량 기준으로 2017년 92조원에 달하는 각종 주류 유통이 불과 1,100여개의 종합주류도매면허를 가진 도매상들에 의해 좌우되는 사실상의 독과점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이렇다 보니 주류도매면허가 권리금이 붙어 음성적으로 거래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가격담합까지 벌이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증언이다. 

 

이런 이유로 프랜차이즈 본사 등 기업형 소비자는 불만이 많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체인 연쇄점 사업본부에는 주류중개업면허가 허용돼 종합주류도매업자와 주류중개업자 간의 자유로운 경쟁으로 소매점에서 소비자들은 싼 가격으로 주류를 구매할 수 있지만, 프랜차이즈 본사에는 주류중개업면허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주점 등 업소의 주류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프랜차이즈 업계는 주류면허를 개방하고, 경쟁을 촉진시켜 주류가격을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관행이었던 리베이트(판매장려금)가 주류가격의 인상요인이라고 보고 그동안은 리베이트를 준 제조사만 처벌하던 규정을 고쳐 7월 1일부터는 리베이트를 받은 도매상과 소매상도 처벌하겠다고 예고했다. 소비자들은 어느 쪽 입장이 맞는지 솔직히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주류유통에 뭔가 문제가 있구나,’ 하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주류유통 전반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함께 합리적인 대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