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시장에 ‘주류대여금 창업’이라는 오랜 관행이 있다. 창업자들이 음식점이나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창업할 때 주류 도매상으로부터 돈을 빌려 창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적게는 1~2천만원에서 많게는 1~2억원에 이르기까지 무이자로 빌려주지만 매달 일정금액을 갚아야 하고, 돈을 빌려주는 도매상이 취급하는 술을 주력 주종으로 팔아야 한다. 

 

무이자라는 달콤함에 많은 창업자들이 이용하고 있다. 특히 호프집 등 주점의 경우 이용비율이 높다. 몇 년 전 주점업계에 ‘스몰비어(소규모 맥주집)’ 열풍이 분 것도 이 ‘주류대여금 창업’ 때문이었다. 가진 돈이 많지 않은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주류 도매상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했고,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대출에 한계가 있는 창업자들에게는 쉽게 창업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쉽게 창업할 수 있어 ‘스몰비어’는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 문화가 생겨나면서 ‘스몰비어’ 열풍은 시들해졌고, 무이자로 돈을 빌린 창업자들은 열심히 장사를 해봤자 빌린 ‘주류대여금’을 20개월 내로 갚는데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공짜 좋아하다가 낭패를 본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면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니 창업자들에게 주류 도매상들이 좋은 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도매상들은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지만 매장 임대보증금을 담보로 잡거나 인보증을 세우고, 또 장사가 잘 되든 안 되든 매달 일정액의 원금을 회수해 가기 때문에 원금을 날릴 일이 없다. 게다가 도매상들이 100% 자기네 돈으로 빌려주는 것도 아니고 주류 제조회사들의 돈을 활용해 빌려준다. 도매상에서 판매한 주류대금을 제조회사에 제때 결제하지 않고 대신 그 돈을 창업자금으로 대여한다는 것이다. 

 

나쁘게 보면 ‘주류대여금 창업’은 주류 제조회사와 도매상들의 술을 많이 팔아먹기 위한 마케팅 전략에 불과한 것이다. 또 좋게 보면 한 푼이라도 자금이 아쉬운 창업자에게는 더 없이 귀한 창업 자금줄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국세청에서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 위임 고시‘를 개정함에 따라 7월 1일부터는 ’주류대여금 창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주류 거래에서 리베이트(판매 장려금)를 주고받을 경우 기존에는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조회사만 처벌했지만 앞으로는 리베이트를 받은 도매상과 소매상도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리베이트 관행이 없어지면 무이자로 빌려주던 ’주류대여금‘ 관행도 사라지게 된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골목상권이 무너질 우려가 높다고 보고 있고, 한쪽에서는 무분별한 창업을 막기 때문에 오히려 골목상권이 건실해질 것이라는 의견이다. 

 

(사)한국프랜차이즈협회는 20일 국세청에 보낸 의견서를 통해 “‘주류대여금’은 금융기관 접근이 어려운 소규모 창업자들에겐 자금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사(私)금융 역할을 해왔다”면서 “이를 전면 금지할 경우 신규 진입의 축소로 기존 자영업자의 퇴출의 길도 막혀 골목상권의 순환구조가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류대여금’이 없어지면 신규 창업자가 줄고, 그렇게 되면 기존 자영업자가 장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주류대여금’은 오랫동안 창업 자금줄 역할을 했는데, 이를 금지시키면 외식시장의 시스템 붕괴까지 우려된다는 논리다. 논리의 비약이긴 하지만 금융실명제로 인한 자금경색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주류대여금’이 무분별한 창업을 유도한 것이 사실인 만큼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의 ‘묻지 마 창업’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라는 의견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인구대비 음식점 수가 너무 많아 1년에 새로 생기고 없어지는 음식점이 무려 17~18만개가 되는 상황에서는 건실한 자영업 생태계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다. 

 

업계에 따르면 중견 도매상 한 개가 한 달에 신규로 빌려주는 ‘주류대여금’이 10억원 정도이기 때문에 업계 전체로 따지면 매월 수백억원대의 ‘주류대여금 창업’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긍적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는 ‘주류대여금 창업’이 중대한 기로에 선 것만은 분명하다. 정부가 어떤 방향을 선택하든 자영업자들에게 충격적인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