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잎이 만개하지 않은 어느 이른 봄날, 상투 튼 장정 네 명과 댕기머리 사내아이가 한가로이 소풍을 즐기고 있다. 한 남자는 부채를 들고 판소리를 하는 듯하고, 한 쪽의 간이 화덕에는 소래기 안에서 물이 끓고 있다. 

 

느긋한 봄날의 답청(踏靑) 풍경이다. 답청이란 따뜻한 봄날 파릇파릇 돋아난 풀을 밟는다는 뜻으로 답청절, 즉 삼짇날(음력 3월3일)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기도 했다. 봄내음이 풍기는 맛난 음식을 준비해 산과 들로 나가 꽃놀이하며 하루를 즐기는 삼짇날 풍경은 당시엔 흔한 일이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봄에 떠나는 야유회라고나 할까. 

 

3월 3일을 중삼(重三)이라고도 하는데, 5월 5일 단오, 7월 7일 칠석, 9월 9일 중양절 또는 중구(重九)와 함께 다섯 중절(重節)의 하나로,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명절이다. 3월은 살찐 웅어가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계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렇듯 봄날이 되면 강변에 나가 웅어를 잡아 회로도 먹고 탕으로도 끓여 먹었다. 

 

봄에는 다양한 술, 즉 과하주, 소곡주, 두견주, 도화주, 송순주 등을 빚기도 하고, 산병, 환병, 진달래 화전도 만들어 먹었다. 날이 화창하면 진달래 화전 재료를 산과 들에 가지고 나가서 즉석에서 지져 먹기도 했다. 그래서 답청을 ‘화전놀이’ 또는 ‘꽃다림’이라고도 했다. 날은 따사롭고 나무에는 새싹이 돋아 오색 꽃망울을 피우는지라 노인에서부터 어린이까지 마음에 맞는 지인들과 모여 물 있고 꽃 있는 곳을 찾아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화전 하는 장면은 김삿갓의 시에도 등장한다. 

 

작은 시냇가에서 솥뚜껑을 돌에다 받쳐

흰 가루(찹쌀가루)와 푸른 기름으로 두견화(진달래꽃)를 지져

쌍젓가락으로 집어먹으니 향기가 입에 가득하고

일 년 봄빛이 뱃속에 전해지누나.

 

삼짇날의 떡은 뭐니 뭐니 해도 송편일 것이다. 지금은 추석 때 송편을 먹지만 조선시대에는 노비 송편, 한식 송편, 삼짇 송편, 한가위 송편 등 때마다 송편을 먹었다. 

 

꽃다림을 하러 갈 때는 각종 나물도 무쳐서 가지고 갔다. <전원사시가>에서 어떻게 나물을 묘사했는지 살펴보자. 

 

주먹 같은 고사리요, 향기로운 곰취로다. 

빛 좋은 고비나물 맛좋은 어아리다. 

도라지 굵은 것과 삽주순 연한 것을

낱낱이 캐어내서 국 끓이고 나물 무쳐

취 한 쌈 입에 넣고 국 한 번 마시니

입 안의 맑은 향기 삼키기 아깝도다. 

 

삼짇날에는 화면(花麪)과 수면(水麵) 또한 만들어 먹었다. 녹두가루를 반죽해서 익힌 것을 가늘게 썰어서 꿀을 탄 오미자국에 띄운 것이 화면이고, 녹두국수를 꿀물에 띄운 것이 수면이다. 

 

그림 <봅에 답창 가서 노는 모양>은 남성들이 둘러앉아 야외에서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19세기말 개항장에서 활동했던 직업화가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이다. 

 

<자료협조: 한식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