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라면을 출시했던 삼양식품 전중윤 전 회장이다. 직원들이 매운맛 나는 라면을 개발하자고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먹고 국민들이 위장병 걸리면 누가 책임지나?” 

그래서 삼양라면은 전중윤 회장이 경영일선에 있을 때는 매운 라면을 내놓지 못했다. 반대로 경쟁업체인 농심에서는 매운 라면 ‘신라면’을 출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출시된 라면 제품 중에 베스트셀러 1위다.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다. 

 

아버지로부터 경영을 물려받은 아들 전인장 회장은 아버지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자 2012년 4월 매운 라면 ‘불닭볶음면’을 출시했다. 그리고 7년 만에 ‘불닭’ 브랜드의 누적매출이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만 2,82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에서 ‘불닭’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60%나 됐다. 그리고 지난 7월에는 ‘마라탕면’까지 출시했다. 

 

매운 라면 출시를 반대했던 창업자 아버지는 2014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가 반대했던 매운 라면으로 회사를 회생시키고 있다. 이 또한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다. 

 

세상에는 ‘선’과 ‘악’의 구분이 애매한 경우가 가끔 있다. 원칙적으로는 ‘악’인데 결과가 좋으면 ‘선’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이 위장병 걸릴까봐 매운 라면 개발을 반대했던 전중윤 전 회장의 원칙이 원래는 ‘선’이었다. 그러나 그런 보수적인 원칙을 깨고 매운 라면으로 회사를 회생시킨,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아들 전인장 회장의 경영능력이 오히려 ‘선’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불고 있는 ‘마라’열풍도 같은 맥락이다. ‘마라’는 매운 맛을 내는 중국 사천 지방의 향신료다. 혀가 마비될 정도로 맵고 얼얼한 맛을 낸다고 한다. 우리 고유의 청양고추도 제대로 못 먹는 필자는 당연히 마라를 이용한 음식을 먹어보지 않았지만, 방송에서 ‘목숨’ 걸고 먹는 꼴을 보면 ‘미친 짓’으로 보인다. 

 

원칙적으로는 ‘마라’라는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맞는 음식이 아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식재료 중에 매운 맛을 내는 것은 고추다. 우리는 오랜 세월 ‘맛잇게 매운’ 그 고추를 활용해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대부분의 한식에는 고춧가루와 고추장으로 매운 맛을 낸다. 그런데 지금은 ‘마라’가 들어가지 않은 식품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지독하게 매운 맛을 좋아했단 말인가. 

 

음식은 문화다. 특정지역에서 특정음식이 발달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국 사천 지방에서 ‘마라’라는 향신료가 생기게 된 것도 그 지역의 기후 때문이다. 중국의 사천 지방은 기온차가 심하고 습한 기후로 인해 음식이 부패되기 쉬운 지방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개발한 향신료가 ‘마라’다. 그런데 우리가 왜 그 ‘마라’를 그렇게 열심히 먹어야 하는가. 우리의 전통 매운맛 청양고추 만으로도 충분히 매운맛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스마트시대의 소비자들은 ‘새로운 음식’을 추구한다. 그래서 여행을 갔을 때 국내에서는 먹어보기 힘든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은 여행의 묘미이자 새로운 경험이라 권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을 국내 식품·외식업체들이 앞 다퉈 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에 어느 치킨 브랜드에서는 ‘허니마라치킨’이라는 메뉴를 내놓았다. 달콤한 ‘허니치킨’과 매운 ‘마라치킨’을 섞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걸 보고 필자는 ‘병(매운맛) 주고 약(단맛) 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맛에 대한 원칙도 없고,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배려는 더더욱 없는 지극히 원시적인 ‘상술’에 불과한 짓이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했느냐가 얼마나 많은 이윤을 추구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식품·외식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자기들이 공급하는 식품과 음식이 국민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최소한의 양심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