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9년 5월 15일에 필자는 ‘조리사여, 잠에서 깨어나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내용을 소개하자면, 당시 대통령 영부인이 직접 전면에 등장해 한식세계화추진단을 출범시키는 자리에 조리복장을 한 한식 조리사는 보이지 않고, 양복을 쫙쫙 빼입은 신사숙녀만 폼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글이었다. 

 

나는 당시 칼럼에서 “조리사들이여, 당신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배운 것이라고는 ‘칼’ 잡는 일밖에 없는 사람들이 그런 중앙무대에 서는 것은 언감생심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분을 삼키고 있는가. 어느 경우든 그 책임은 조리사 여러분에게 있다는 사실도 아는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필자는 이어서 “황제의 한 끼 밥상도 조리사의 손에 달려 있고, 막판 노동자의 달콤한 한 끼 식사도 조리사가 책임진다”면서 “한식세계화의 중심에 서야 할 사람들이 변죽도 울리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일갈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9년 12월 5일, 필자는 또 다른 이유로 대한민국 조리사들에게 한마디 하고자 한다. <미쉐린 가이드> 사태에 대한 입장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같은 동료인 윤경숙씨가 용기를 내어 폭로한 미쉐린 가이드의 비리에 대해 가타부타 입장을 밝히라는 것이다. 윤경숙씨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하면 미쉐린 가이드 추방운동에 힘을 보태고, 그에 동의할 수 없다면 왜 동의할 수 없는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조리사 단체인 (사)한국조리사중앙회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또 한식과 관련된 다른 단체들도 많다. 그런데 어느 한 쪽에서도 미쉐린 가이드 사태와 관련해 입장문을 내놓은 곳이 없다. 지난해 윤경숙 대표가 <밥상머리뉴스>에 미쉐린 가이드 문제를 최초로 폭로하던 그 즈음에 미쉐린 가이드 스타 레스토랑 선정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에오’의 어윤균 세프만이 힘을 보태고 있다. 

 

윤경숙씨는 5일 페이스북을 통해 “식문화업계 여러분, 이번 미쉐린 가이드 사건은 업계 모두의 권익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힘을 모아 주세요.”라며 미쉐린 가이드 추방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권에도 호소하고 있다. 이제는 윤경숙씨의 이런 호소에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조리사, 특히 한식 조리사들이 답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도 공식적인 입장을 밝혀야 한다. 

 

다시 10년 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한식세계화추진단 출범식에 왜 조리복장을 한 한식 조리사가 무대에 서지 못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조리사들 자신에게 더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하고, 스스로 권위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왜 이런 지적을 하는지는 그동안 조리사중앙회가 어떻게 운영되어 왔는지 잘 알고 있는 조리사들은 이해하리라 믿는다.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돈’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도 많지만 ‘기술’로 ‘인격’을 파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수십 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면서 갈고 닦은 기술에 혼을 담아 만든 음식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장인’이라고 칭한다. 진정한 조리사는 장인이라는 말이고, 장인이라면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자부심은 있다 하더라도 ‘조리사’라는 직업 자체의 위상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권위와 위상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프로는 몸값을 스스로 결정한다. ‘조리사’를 ‘세프’로 부른다고 권위와 위상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불의에 당당히 맞설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인격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권위와 위상이 높아진다. 

 

필자는 이번 미쉐린 가이드 사태가 조리사들 스스로 권위를 세우고,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특히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유명 셰프들은 본인의 인기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셰프의 꿈을 키우고 있는 후진들에게 선배들의 정의감을 보여줌으로써 요리사가 더욱 매력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면 좋겠다는 뜻이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미쉐린 가이드 비리를 폭로한 윤경숙 대표와의 인터뷰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0qwPinZYhgY (김병조tv, 김병조가 만난 사람 - 윤경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