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주의력을 자주적으로 계속 돌려세울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판단력, 인격, 그리고 의지력의 뿌리이다. 이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이 능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교육이다” 

19C 미국 실용주의 철학의 비조로 칭송받는 윌리엄 제임스의 말입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철학, 교육학, 의학까지 넘나들었던 대석학이었답니다.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학구열이 뛰어나 소년기부터 유럽의 여러 나라에 유학해서 요샛말로 융합적 석학의 금자탑을 세운 인물이지요. 위의 말은 교육학의 관점에서 했던 말인 듯합니다. 그렇지만 그 때까지 그가 연구했던 모든 학문이 바탕이 된 결정체적 언구였을 것입니다.

‘방황하는 주의력’이란 마음이 이런 저런 생각을 끊임없이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던가, 어떤 소리를 들을 때, 또는 어떤 기억이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그와 연관된 생각이 일어납니다. 이런 생각들은 그에 따른 감정까지 아울러서 일어납니다. 생각에 따라 유쾌한 기분, 불쾌한 기분, 그저 그런 기분 등이 됩니다. 그 때마다 마음은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분노에 휩싸이거나 즐거움에 들뜨기도 합니다. 마치 이리 저리 부는 바람을 쫓아 이리 저리 내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매순간 마음이 쉬지 못하고 바쁘게 됩니다. 깨어있을 때는 물론, 잠이 들어서까지 마음은 바쁘게 움직입니다. 마음(주의력)이 고요히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황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쉬지 못하는 마음은 어쩔 수없이 피곤해집니다.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따라 마음이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흘러갑니다. 하루가 생각으로 시작해서 생각으로 끝나게 됩니다. 웃다가 울고, 즐거워하다가 분노합니다. 욕망에 갈등하고 기대감과 허무감 사이를 왕복합니다. 행복감에 젖어 있다가 불행감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면서 행복하다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면의 실체는 이러한 마음의 작용입니다. 이런 상태가 과도해지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마음이 경직됩니다. 삶 전체가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방황하는 주의력을 ‘자주적으로 돌려 세운다’는 것은 끊임없이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혀 울고 웃는 마음을 그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과 감정의 노예로 부림을 받던 마음을 본래의 주인자리로 돌려놓는 것이지요. 생각과 감정은 본래 마음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작용의 노예가 되지요. 본말이 전도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마음에 여러 가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방황하는 주의력(마음)을 자주적으로 돌려세워야한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이런 저런 생각, 욕망, 기쁨, 슬픔, 분노, 쾌락 등의 노예가 되도록 방치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주의력이 방황하는 한 그 삶은 주인의 삶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주인의 삶을 살지 못하면 판단력, 인격, 의지력의 확고한 뿌리를 갖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방황하는 주의력을 계속 자주적으로 돌려세우는 능력이 있어야 스스로의 주인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능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이고 최고의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방황하는 마음(주의력)을 자주적으로 돌려세우는 방법을 전문적으로 연습하는 것이 바로 명상입니다.

명상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누구나 연습으로 가능해집니다. 명상은 스스로가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한 번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주인으로 살아왔는가?”
“나는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글쓴이 김준영은
명상나눔협동조합 이사와 마음자리 명상그룹 리더를 맡고 있으며, 경북 봉화 축서사 참선 지도, KBS 명상동아리 명상 지도, 불교아카데미 명상 지도 등의 경험이 있는 명상 전문가입니다. 앞으로 명상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오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