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권력이 된 미쉐린 가이드의 권위

내가 <미쉐린 가이드>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시점은 1990년대 초반이다. 어느 방송 뉴스에서 “프랑스에는 집집마다 빨간 색의 책이 한 권씩 있는데, 이것이 맛있는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했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나는 ‘언젠가는 한국판 미쉐린 가이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어떻게 하면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맛집을 선정할까’ 하는 고민만 했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맛집을 선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엄밀하게 말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음식은 그 자체가 문화이고, 문화는 향유하는 사람의 취향과 개성에 따라 천차만별 다르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전제를 깔고 보면 100년이 넘도록 레스토랑 가이드북으로서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미쉐린 가이드>는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 미쉐린 가이드가 오랜 세월 권위 있는 레스토랑 가이드북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추천 레스토랑을 선정할 때 공정하면서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스타 레스토랑 선정 과정에서 거액의 금품을 요구했다는 어느 식당 주인의 폭로를 접하면서 미쉐린 가이드에 대한 필자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권위가 권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쉐린 가이드의 권위가 높아지자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레스토랑이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가 되도록 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했고, 미쉐린 가이드는 이를 악용해서 돈벌이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간업자는 물론 정부까지 이 장삿속에 놀아났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쉐린 가이드는 민간업자와 정부의 요청에 의해 2015년 말에 한국판을 발행할 계획이었으나 한국에는 ‘별’을 달아줄 만한 수준이 있는 레스토랑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1년을 질질 끌면서 컨설팅을 받기를 권했고, 그 컨설팅 명목으로 거액의 금품을 요구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필자가 후속으로 취재한 바에 따르면 미쉐린 가이드는 그렇게 컨설팅 명목으로 돈을 버는 것 외에도 H자동차를 비롯해 국내 굴지의 12개 회사로부터 수십억원의 광고 스폰서를 받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와 관계가 있는 어느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미쉐린 가이드는 절대 손해 보는 짓은 하지 않는다.”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필자는 이 칼럼을 1년 만에 탈고한다. 지난해 11월 <윤가명가> 윤경숙 대표의 용기 있는 결단을 바탕으로 “미쉐린 별3개 대가로 거액 요구”라는 제목으로 윤경숙 대표와의 단독 인터뷰를 보도한 지 꼭 1년 만에 이 칼럼을 완성한다. 사실은 <밥상머리뉴스>가 미쉐린 가이드 관련 보도를 처음 했을 때 독자와 관계자들은 놀라면서도 밥상머리뉴스 보도의 진실성을 믿기 보다는 “미쉐린 가이드가 그럴 리 있겠냐”라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칼럼을 쓰다 만 것이었다. 다행히 공영방송 KBS가 후속 취재를 충실히 해서 밥상머리뉴스 보도 이후 1년 만인 11월 12일에 보도를 함으로써 미쉐린 가이드의 비리를 다시 공론화시켰다. 밥상머리뉴스보다는 취재력이 몇 배나 뛰어난 언론사니까 밥상머리뉴스의 보도를 보고 긴가 민가 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미쉐린 가이드의 실체를 알게 되리라 믿는다. 누가 먼저 보도를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권력이 된 미쉐린 가이드 권위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밝혀지길 기대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칼럼을 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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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누가 대통령의 꿈을 깼는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사퇴한 10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조국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 개혁은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꿈같은 희망은 어떤 희망인가?. 우선 ‘희망’은 사전적으로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라는 것’을 말한다. 조국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이루고자 했던 검찰 개혁이 문재인 대통령의 희망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꿈같은’은 무슨 뜻인가? ‘꿈’은 사전적으로 3가지의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는 잠자는 동안의 정신 현상이고, 둘째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셋째는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다”에서의 꿈은 문맥상으로 볼 때 셋째의 꿈, 즉 헛된 기대나 생각인 듯하다. 필자는 여기서 한글의 애매모호함을 느낀다. 대통령의 말 그대로를 해석하면 대통령이 희망했던 검찰 개혁은 이제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대통령의 꿈이 깨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누가 대통령의 꿈(희망)을 깻단 말인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대통령의 꿈을 깼느냐, 아니면 윤석열 검찰총장이 깼느냐, 아니면 야당인가, 아니면 광화문 광장에 나간 국민들인가? 그것도 아니면 언론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대통령 스스로가 자신의 꿈을 깬 것은 아닌지?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꿈을 깬 사람이 있다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누군지 분명치가 않다. 전문가들이야 행간(行間)을 읽을 수 있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참 뜻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선문답 화법에 국민들은 피로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말에는 또 한 가지 어폐(語弊)가 있다. 검찰 개혁이 과연 ‘꿈같은 희망’이 되어 버렸냐는 것이다. 이번 ‘조국사태’에서 확인했듯이 검찰 개혁을 반대하는 국민은 거의 없었다. 서초동 집회에 참가한 군중들의 구호는 ‘검찰개혁’ ‘조국수호’였고, 광화문 집회에 참가한 군중들의 구호는 ‘조국사퇴’였다. 광화문 집회의 외침은 검찰 개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는 당사자가 검찰 개혁의 적임자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사퇴하자 대통령은 “검찰 개혁은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는 조국 장관 아니면 검찰 개혁은 사실상 어렵다로 들린다. 대통령이 국민들을 상대로 할 말은 아니다. 조국 장관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검찰개혁’을 외치는 서초동 집회 군중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또한 검찰 개혁은 찬성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장관으로는 안 된다고 외친 광화문 집회 군중들에 대한 화답으로도 부적절하다. 우리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참으로 애매모호한 표현들이 많다. 그래서 쉬운 것 같지만 어렵다. 그러 하기에 공식적인 말과 글에서는 일반 대중들에게 뜻이 분명히 전달될 수 있도록 정확하게 표현을 해야 한다. 대다수의 국민들을 상대로 한 대통령의 언사(言辭)는 더욱 그러해야 한다. 필자는 아직도 모르겠다. 누가 대통령의 꿈(희망)을 깼는지, 그래서 누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지, 또 검찰 개혁이라는 희망이 없어진 것은 맞는지.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이 기사와 관련된 동영상 뉴스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RpBPMTWMG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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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실패한 대통령의 ‘패착’

바둑을 둘 때 패배의 원인이 되는 결정적인 악수(惡手)를 ‘패착(敗着)’이라고 한다. 실패한 대통령의 경우도 한 판의 바둑과 같이 임기 중에 ‘패착’에 해당하는 악수를 둔다. 대표적으로 실패한 대통령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패착’은 뭘까? 필자는 2015년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배신의 정치’라고 본다. 2015년 4월 8일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연설을 통해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고 주장하자 같은 당의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 유승민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을 인용한 퇴임사를 남기고 원내대표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당선이 되어 1차적으로는 대통령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나아가 탄핵정국에서 유승민 의원과 그의 추종세력들은 당시 야당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동조함으로써 (박근혜 입장에서는)진짜 배신자가 되었다. 자기편 유승민과 적대적 관계가 된 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패착이라고 본다. 임기가 절반이나 남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성공과 실패를 언급하기는 시기상조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실패한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자기편 윤석열을 적으로 만든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패착’이 될 것으로 본다. 윤석열만 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국민들까지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30일 청와대에서 조국 법무부장관으로부터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검찰총장에게도 지시합니다.”라면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검찰개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할 것”을 지시했다. 임명하는 자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살아있는 권력에도 성역 없이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독려해놓고 당사자가 아닌, 수사의 대상인 조국 법무부 장관을 앞에 두고 방송으로 업무지시를 한 셈이다. 지시를 받는 당사자의 심정이 어떨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를 지켜본 많은 국민들이 ‘이대로 두면 윤석열이 위험하겠다’는 생각으로 10월 3일 개천절에 광화문에 모여 ‘조국사퇴’를 주장하며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악수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광화문과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의 ‘조국사퇴’와 ‘조국수호’를 외치는 대규모 군중집회가 되풀이 되고 있는데도 대통령은 “국론분열이 아니다”라고 말해 많은 국민들에게 불통(不通)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불통은 국민들과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생각과 의견에 화답(和答)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조국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해서 불통이었고, 대다수 국민들이 지금 극도로 국론이 분열되었다고 보는데 국론분열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불통의 이미지에 쇄기를 박았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아직 임기가 절반이나 남아 있어 기회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불통의 이미지를 벗고 본인이 취임사에서 말한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거듭 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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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쓴맛】 국대떡볶이 김상현 대표의 일탈에 대하여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어느 프랜차이즈 사업가가 노골적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장관을 비판하고 나서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국대떡볶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기업 (주)국대에프앤비의 대표이사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공산주의자” “코링크는 조국꺼”라는 표현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법무부장관을 공개적인 SNS 공간에서 원색적으로 비판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그치지 않고 보수성향의 인터넷방송에도 출연해 같은 주장을 되풀이함으로써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사진은 김상현 대표 페이스북에서 캡쳐한 것임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기에 특정 사안에 대해 자유롭게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 단,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그 의사표현이 사실에 근거를 해야 하고, 그 발언으로 인해 선의의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상현 대표의 언행이 적절했는지 따져보자. 우선 그가 주장하는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코링크는 조국꺼”라는 표현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위험한 주장이다. 코링크가 조국 법무부장관의 것인지는 검찰의 조사결과가 나와야 확인이 가능한 것이고, 특히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표현한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소지가 높다. 일부에서는 그의 언행을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평가하지만 객관적으로는 “잘못된 일탈”임이 틀림없다. 특히 그의 이런 일탈행위는 ‘오너리스크’로 작용해 <국대떡볶이>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하는 가맹점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부적절하다. 공정거래위원회 정보공개서에 따르면 <국대떡볶이>는 2010년에 설립돼 현재 7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본사의 매출은 2015년 79억원에서 2016년 62억원, 2017년에는 51억원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매장이 2015년 98개에서 2016년 85개, 2017년 74개로 줄어들었으니 매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돌출행동이 회사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단할 수 없다. 한쪽에서는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팔아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단기적으로는 가맹점의 매출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매출이 늘든 줄든 <국대떡볶이>라는 브랜드 인지도는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럼 김상현 대표는 이런 것까지 계산을 하고 그런 대단한(?) 일을 저질렀을까? 이른바 노이즈마케팅을 노린 것일까? 본인만이 알겠지만 그가 SNS에 올린 글을 보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은 점이 많아서 진실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가맹점 사장님들이 불안해 한다”며 “준비가 전혀 되지 않으신 가맹점 사장님들의 놀라신 마음에 죄송해서 눈물만 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매장별로 매출을 면밀하게 파악 중에 있는데, 매출이 2배가 오른 매장도 있다”면서 “한 술 더 떠주십시오, 가셔서 팔아주십시오”라며 호객행위에 가까운 발언도 하고 있다. 그는 매출이 2배나 오른 매장도 있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가맹점들이 거짓말로 선동하는 자들에 의해 부당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면서 “꼭 이분들이 부당하게 자신의 재산을 잃지 않도록 가서 더욱 팔아주십시오”라고 하소연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횡설수설에 가깝다. 우리는 그동안 프랜차이즈 본사 경영진의 잘못된 일탈행위로 인해 수많은 가맹점주들이 선의의 피해를 보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했다. 이런 경우를 ‘오너리스크’라고 하는데, 이번 국대떡볶이 김상현 대표의 일탈행위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주장이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그는 1차 고객인 가맹점주를 무시하고 불안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가맹사업을 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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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쓴맛】 ASF가 식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조마조마했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결국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해 돼지 사육농가는 물론 외식업계까지 긴장시키고 있다. 진원지가 아프리카인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아시아권에서 처음 발생한 것은 지난해 8월 중국에서다. 중국에 이어 몽골,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북한에서까지 발생함으로써 국내로의 유입은 사실상 시간문제였다. 지난해 8월 중국에서 처음으로 ASF가 발생한 이후 <밥상머리뉴스>가 약 1년간 보도한 ASF 관련 기사만 해도 50여 건에 이른다. 그만큼 우리정부도 ASF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특히 이낙연 국무총리는 ASF가 중국에 이어 몽골과 베트남 등으로 확산되자 지난 3월 12일 국무회의에서 철저한 대비를 지시한데 이어, 5월말 북한에서까지 발생하자 6월 3일 국무회의에서는 ASF 유입 차단을 위해 최고 수준의 방역을 지시한 바도 있다. 그러나 AI나 구제역 등 다른 가축질병에서도 그러했듯이 긴장이 풀리는 명절연휴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이제 관심은 국내에서 ASF가 어디까지 확산될 것이며, 이로 인해 국민 식생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있다. 우선, ASF는 확산속도가 매우 빠른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에서의 전국적인 확산은 방역당국의 강력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9월 16일 경기도 파주에서 처음 발생한지 하루 만에 경기도 연천에서도 발생해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경기도 일부 지역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될 경우 돼지 사육농가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가능성이 높다. ASF는 한 번 발생하면 완전히 해소하는데 적어도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발생 1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사육두수의 1/3인 1억3천만 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한 상태다. ASF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사육농가가 입지만 2차적인 피해는 소비자다. ASF는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전염되지 않는다. 따라서 돼지고기를 섭취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경제적 부담이다. 돼지고기 수급 불균형으로 돼지고기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SF 발생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17일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16일에 비해 32.4%나 폭등했다. 심리적인 요인도 작용했겠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될 경우 돼지고기 가격 급등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ASF가 국내에서만 발생했다면 부족분을 수입하면 되지만 세계적으로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세계 소비량의 50%) 중국에서 여전히 ASF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전 세계적인 수급 불균형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중국의 경우 ASF가 발생한지 1년이 지난 현재 시점 돼지고기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46.7% 오른 상태다. 정부가 밝힌 통계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올랐다는 것이 언론의 보도다. 돼지고기 가격의 급등은 다른 육류가격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돼지고기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대체제인 닭고기나 소고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닭고기와 소고기의 가격도 오르게 되어 있다. 이를 반영하듯 ASF 발생 소식이 전해지자 17일부터 주식시장에서는 닭고기 관련 회사들의 주가가 폭등을 하기 시작했다. ASF가 축산농가 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라는 뜻이다. 일반가정이야 그래도 육류 소비를 좀 줄이면 된다고 하지만 육류를 주요 식재료로 영업을 하는 음식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음식점들은 이미 조류인플루엔자(AI)나 구제역 발생 등의 선행 경험이 있어서 더욱 긴장하는 분위기다. 구제역 파동 때는 비싼 돈을 주고도 돼지고기를 구하질 못해 삼겹살집은 개점휴업을 해야 했던 기억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돼지 사육농가는 그나마 살처분에 대해서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만 음식점들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이처럼 ASF는 돼지 사육농가는 물론 외식업체, 그리고 일반국민의 식생활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ASF의 전국적인 확산을 막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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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말랭이에 무친 외할머니 이야기’
실항민의 아픔이 담긴 2019 한식문화 이야기 공모전 장원 수상작

한식에 담긴 우리의 문화, 밥상에 묻어있는 가족의 사랑과 그리움, 한식이 주었던 따뜻한 위로 등 한식과 관련된 추억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의 양식’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런 추억을 함께 나누기 위해 2019 한식문화 이야기·삽화 공모전 ‘우리가(家)한식’을 진행했는데 16일 수상작이 발표됐다. 이에 밥상머리뉴스는 장원상(대상)을 받은 ‘무말랭이에 무친 외할머니 이야기’(이재윤, 필명: 기며니)의 전문을 소개한다. 이 작품은 이북식 무말랭이 반찬을 소재로 평생토록 고향을 그리워한 실향민이셨던 외할머니의 사연을 담았다. 무말랭이에 무친 외할머니 이야기 - 작성자: 이재윤 (필명: 기며니) 외할머니의 무말랭이는 빨간색이 아니었다. 고추장과 고춧가루로 양념한 새빨간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잘게 썰어 몇 번을 말렸다 불렸다를 반복한 무는 새끼손톱 길이에 아주 얇았다. 흡사 한 뭉치의 구더기 같아 보였다. 간장과 참기름으로 양념한 무말랭이는 허여멀건한 옅은 갈색이었다. 이 이북식 무말랭이를 숟가락으로 한가득 떠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거리면 씹는 맛이 독특했다. 꼬들 거리면서도 눅눅하고 물렁하면서도 아삭했다. 무 특유의 짭조름하고 알싸한 맛이 몇 배로 압축돼 강한 맛이었으나 이내 고소한 참기름과 간장이 스며 코까지 고소한 향이 올라왔다. 나는 외할머니네서 무말랭이를 먹을 때면 반찬이 아니라 밥처럼 먹었다. 외할머니는 무말랭이 맛을 안다며 나를 예쁘다 했다. 밥은 그대로 두고, 원형 사기 반찬통도 반 정도 쌓인 새로 무친 무말랭이만 다 긁어먹은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그럴 때면 밥상머리에 같이 있던 이모들은 이내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 어렸을 때는 맛도 없는 무말랭이 귀하다면서 젓가락으로 집어먹어도 아껴먹으라고 뭐라 하더니만..." 나는 이모들이 푸념할수록 더 얼마 없는 무말랭이를 한 술 가득 퍼 먹었다. "얘는 눈치도 없이"라며 둘째 이모가 내 머리에 꿀밤을 꽁하고 쥐어박을 때까지. 보란 듯이 더 과하게 무말랭이를 밥보다 더 많이 먹어댔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평범한 밥반찬은 아니었다. 외할머니와 한집에 같이 살던 다섯째, 막내 이모는 "저놈에 무말랭이 만들면서 죽겠다 거리고 지겨운 옛날 얘기하다 운다"며 푸념했다. 오래된 주공 아파트 꼭대기 15층 외할머니 댁엔 햇살 드는 마룻바닥에 깔린 신문지 위로 잘게 썰린 무들이 늘 말라가고 있었다. 무를 써느라 손목이 시큰거려서 혼났다는 말을 외할머니는 몇 번을 반복했다. 그때만 해도 무는 댕강댕강 쉽게 썰어내는 건 줄 알아서 할머니가 엄살 핀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를 처음으로 썰어본 건 중학생이 됐을 무렵이다. 라면이나 볶음밥 등 간단한 요리들을 한 두 개 정도 할 줄 알았던 터라 양파, 감자, 당근 등을 썰어봤더랬다. 매 해 깍두기 담그려던 엄마가 처음으로 손목이 아파 더 이상 무를 못 썰겠다고 했을 때였다. 다른 야채 썰듯 서걱서걱 대충 칼질하면 되겠지 생각하며 호기롭게 무를 썰어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아직 무는 못 썰 거라며, 손 다친다며 한사코 말렸다. 그러다 결국 손가락 마디까지 아프다며 나에게 칼과 무를 넘겼다.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면서. 무는 다른 야채와 달랐다. 마치 돌덩이를 써는 것 같았다. 지름은 왜 그렇게 큰지. 허벅다리통만한 무는 빈틈이 없는지 칼날이 들어가지 않아 반으로 쪼개기도 힘들었다. 둥근 원통 모양 무의 네 귀퉁이를 잘라 육각형으로 만들고, 그 사각 면을 다시 썰고 썰었다. 무의 3분의 1토막도 못 자르고 식칼을 놓았다. 손잡이와 칼등을 양 손으로 잡고 온 몸의 무게를 실어 내리눌러도 무는 썰리지 않았다. 조금의 요령도 없이 정직한 손목과 손가락의 힘이 정확하게 들어갈 때만 무가 썰려나갔다. 이렇게 힘든데 그냥 사 먹으면 편할 텐데. 내 손으로 만들어 내 새끼에게 먹이겠다는 집념이 있어야만 끝까지 썰 수 있는 게 무였다. 이 바위 같은 무를 구더기 크기까지 고르게 잘라내며 외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할머니는 왜 무를 썰다 울었을까. 외할머니는 응석받이와 생활력 강한 가장의 모습 모두를 지녔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보다 더한 양면성을 가진 할머니의 감정 기복은 나이가 들수록 심해졌다. 즐겁게 여행을 가는 길에, 가족들이 오랫동안 준비해 큰 결심하고 간 고급 레스토랑에서 맥락 없이 엉엉 소리 내 울면서 옛날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넉넉한 시댁과 친정 덕에 걱정 없이 낳아 키우던 큰딸을 등에 엎고 전쟁통에 맨발로 강을 건너고 시체산을 넘어 영문 없이 남한에 오던 그 날이 자꾸 떠오른다며. 샌님 같은 외할아버지는 북한에서 대규모로 목재사업을 하는 집안의 아들이었다. 공부만 잘하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던 외할아버지가 남한에 오니 생활력 없는 샌님일 뿐이었다. 사업을 해보자던 동료에게 큰 사기를 당한 후 외할아버지는 사회로 나가질 못했다. 손 벌릴 곳도 없는데 다섯 딸은 무럭무럭 자라며 점점 더 돈이 필요해졌다. 도도한 깍쟁이였다는 외할머니는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속내를 친구들에게 비치지 않던 자존심 강한 그녀였는데. 친구들에게 화장품과 밀수입한 외국 과자들을 팔기 시작한 거다. 다섯 딸을 공부시키고 먹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할머니는 그렇게 화장품이 가득 들은 보따리를 들고 남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외할머니는 그렇게 30대와 40대를 억척스럽게 돈벌이에 바쳤다. “혀에 쓰인 이북식 무말랭이 레시피” 외할머니의 팔십 몇 해 생신날. 당신이 낳은 다섯 딸과 사위들 그리고 손주, 손녀가 한자리에 모였다. 손주들의 장기자랑이 끝나고 흥이 오른 사위들이 할머니에게 같이 춤을 추자며 손을 잡고 나와 노래를 권했다. 할머니는 노래와 춤을 한사코 거절했다. 할머니는 북에 두고 온 어머니가 생각나 춤추고 노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흥겨운 생일잔치상은 별안간 터진 할머니의 눈물로 싸해졌다. 외할머니는 6남매의 막내딸이었다. 평양 부잣집의 막둥이는 1923년에 태어나 온 가족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컸다. 유복한 집의 막둥이가 으레 그렇듯 걱정 없이 자라며 노래하고 춤추는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북한 무용수 최승희가 어린 외할머니의 춤사위를 보고 할머니가 결혼한 후에도 다시 찾아와 춤꾼이 돼보지 않겠느냐고 했단다. 이 대단한 제안은 가지 못한 길이 아니라 막혀버린 길이 됐다. 피할 길 없던 일제시대와 6.25 전쟁이 재능 많은 소녀의 인생을 영원히 비틀어버린 것이다. 외증조할머니는 막내딸을 살리려 "북에서 중공군과 빨갱이들이 쏟아져 내려오니 먼저 남으로 가있으라"며 단호하게 외할머니의 등을 떠밀었다고 한다. 등에 큰 이모를 업은 외할머니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신발이 닳아 없어질 만큼 걷고 또 걸었다. 등 뒤에서 총소리가 나며 옆에 걷던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질 땐, 하루빨리 남한에 도착해 엄마에게 위치를 알리겠다는 생각만 하며 찢어진 맨발로 암흑 속을 가르며 아이를 안고 죽도록 뛰었다. 이게 끝이었다. 한반도를 반으로 가른 선이 남과 북에 수억 개의 이별을 만들었다. 곧 따라 내려오겠다고 했던 외할머니의 엄마는 38도 선을 넘지 못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그리울 때면 이를 앙 물고 굳이 힘든 과정을 거쳐 무말랭이를 만들었다. 외할머니의 엄마, 나의 증조할머니는 커다란 한옥집주인 마님이었다. 장작 패는 하인, 요리하는 하인이 있었지만 무말랭이만은 직접 만드셨다고 한다. 사랑하는 막내딸인 우리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짭조름한 이북식 간장 무말랭이만은 당신 손으로 지어 먹이셨다. 칼날이 안 들어갈 만큼 단단한 무를 천천히 썰고 또 썰어 겹치는 부분 없이 판판하게 잘 펴서 햇볕에 말리고, 다시 물에 헹구고 또 말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동안. 외증조할머니는 외할머니를 품에 안고 쓰다듬으며 노래하셨다. 무의 물기가 햇볕과 바람에 날아가며 내는 달큼한 냄새를 맡을 때면 외할머니는 엄마품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을까. 삶의 무게에 짓눌려 숨을 못 쉴 만큼 힘든 날에도 외할머니는 기댈 곳이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물건을 좀 사달라고 하도 많이 이야기를 해서 보통의 친구에게 하듯 힘들다고 하소연할 수 없었다. 생활력 없는 남편도 매일 학비가 없다, 기성회비가 없다 징징대는 다섯 딸도 모두 외할머니에게 기대 살아가는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날이면 할머니는 밤새 무말랭이를 만드셨다. 커다란 무 하나를 손목이 시리도록 다 썰어도 말리고 나면 한 줌이 채 안 된다. 눈물과 그리움이 담긴 반찬 앞에서 철없는 딸들은 다른 집처럼 계란이나 소시지가 먹고 싶다며 투덜댔다. 비싸지도 않은 무와 간장으로 만든 반찬을 다섯 딸은 마음대로 먹지도 못했다. 무말랭이로 숟가락을 뻗을라 치면 외할머니는 매서운 눈초리로 "젓가락으로 먹으라우!"라고 했다. 얼마 없는 무말랭이를 다섯 딸이 골고루 나눠먹게 하려고 그랬던 거였는데. 삶의 무게에 눌린 외할머니가 눈물로 버무린 반찬에 담긴 사랑은 사라지고 날카롭게 뱉는 말만 어린 딸들의 마음에 박혀 서운함만 남긴 거다. 그렇게 외할머니의 무말랭이 속에는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가난했던 지난날 다섯 딸을 배불리 먹이지 못한 미안함이 켜켜이 스며있었다. 다른 친척 언니 오빠들은 맛이 없다며 안 먹는 무말랭이를 나는 할머니의 예쁨을 받으려 한 숟가락 가득 퍼먹었다. 외할머니는 영악한 내 속을 아셨으려나……. 나를 주려고 만드셨다며 손바닥만한 사기 반찬 그릇에 담아주신 이북식 무말랭이는 사실 우리 집 냉장고로 가면 꽤나 오랫동안 냉장고 한켠을 차지하다 결국 곰팡이가 났었다. 과거와는 다르게 식탁에는 계란과 소시지는 물론 각종 반찬과 피자 치킨 등이 차고 넘쳤다. 무엇보다도 집에서까지 외할머니 기분 좋으라고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이북식 무말랭이는 만들기 까다로운 데다가 맛까지 심심해 가성비 떨어지고 인기 없는 반찬이 됐다. 외할머니 앞에서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반찬이었던 무말랭이는 할머니 연세가 8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식탁에서 사라졌다. 할머니의 몸은 무를 잘게 썰만큼의 힘을 내지 못했고, 연골이 사라진 온몸의 관절 사이가 고통을 뱉어냈기 때문이다. 다른 집보다 좀 더 자주 평양냉면과 평양식 완자 집을 찾아가는 것으로 할머니의 향수병을 달랠 뿐이었다. 가족을 북에 두고 남으로 내려온 외할머니의 형제들은 백두산 국경지대 등을 활용해 50년 넘게 갖은 방법으로 어머니(외증조할머니)를 찾았다. 2000년대 초반이 돼서야 증조할머니의 묫자리와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찍은 사진만 찾았다. 무용을 잘했던 막내딸의 머리가 다 희고 얼굴은 쭈그렁 방탱이가 된 모습을 꼭 어머니께 보여드릴 거라는 말을 할 때면 외할머니는 아이처럼 행복해했었는데 말이다. 아주 어릴 때 어깨너머로 본 게 전부인데도 엄마가 하던 무말랭이 맛을 그대로 냈다며 당신이 만든 무말랭이를 꼭 드리고 싶다고 했었다. 부잣집 막내딸을 억척스러운 보따리상으로 바꿔버린 38선, 모녀가 가장 좋아했던 반찬통을 들고 친정집 가는 길도 막아버린 휴전선. 수많은 이의 운명을 갈라버린 이 선을 넘어 하늘에서 만난 증조 외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서로의 흰머리와 주름을 매만지며 몇 시간을 부둥켜안고 울었겠지. 그러고 나서 하늘에도 무가 있다면 모녀는 돌 같은 무를 잘게 썰고 또 썰어 밝은 볕에 말리고 계실 것 같다. 놀랍게도 외할머니의 무말랭이 레시피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다섯 딸을 포함해 정말 아무도 없단 말이다. 야속하기도 하지. 나는 무를 써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임을 알고도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려고 무말랭이를 한가득 퍼먹기만 했다. 다섯 딸들, 이모들은 그저 어린 날의 상처이자 지긋지긋한 무말랭이였을 뿐이다. 그래도 빨갛고 아삭하고 두꺼운 무말랭이를 먹을 때면 "이건 진짜 무말랭이가 아니야"라는 생각을 참지 못하고 말로 뱉어내는 우리는 분명히 외할머니가 낳고 빚은 딸들이다. 뜬금없이 외할머니가 그리워 목이 메일 때 엄마와 무를 썰어 볕에 말려야겠다. 나중에 외할머니를 만나면 그리고 외할머니의 엄마를 만나면 나도 꼭 자랑하려고. 외할머니가 만든 거랑 똑같은 맛을 찾았다고 할 거다. <사진설명: 55년 동안 엄마를 찾아 헤맨 외할머니의 손엔 2005년이 되어서야 그리운 어머니의 영정사진이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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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여름 폭염은 능이백숙으로 이기자

산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들은 1능이, 2표고, 3송이라고 말한다. 능이가 버섯 중에 으뜸이라는 것이다. 산삼 못지않게 귀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능이버섯을 넣고 끓인 백숙이 더운 여름 최고의 보양식으로 꼽힌다. 올여름은 역대 최악의 폭염이 예고돼 세심한 건강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이에 능이백숙 전문 식당 중에서 기자가 직접 맛을 본 최고의 맛집을 소개한다. 주인장이 직접 채취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식재료다. 양질의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다. 경기도 파주 금촌통일시장 인근에 있는 <고기랑 찌개랑>의 능이백숙은 닭을 제외한 모든 식재료를 주인장이 직접 산에서 채취한 것들이다. 백숙에 들어가는 능이와 산더덕, 그리고 엄나무와 헛개나무, 겨우살이 등 철따라 나는 각종 식재료들은 모두 산적같이 생긴 산사나이 이청길 대표가 직접 강원도의 깊은 산중에서 채취해온 것들이다. 또 백숙에 들어가는 닭은 직접 키우지는 않지만 지인이 키우는 토종닭을 백숙 주문 당일에 잡아온다. 그러니 백숙이 맛있을 수밖에 없다. 버섯찌개·버섯전·산채비빔밥 맛도 예술! 이 가게에는 능이백숙만 있는 것이 아니다. 능이 외에도 산에서 나는 여러 가지 버섯으로 만든 버섯찌개와 버섯전은 맛과 양에 비해 가격이 너무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성비가 높다. 자연산 버섯찌개에는 7~8가지의 버섯이 들어간다. 1만 원짜리 버섯전 한 접시, 다른 식당이라면 적어도 1만 5천원 이상은 받지 않겠나 싶을 정도다. 그런가 하면 산채비빔밥 한 그릇 먹고 나면 저절로 자연인이 된 기분이 든다. 보약을 파는 축구인 출신 산사나이 <고기랑 찌개랑>은 부부가 운영한다. 산에도 부부가 함께 가고 조리도 함께 한다. 젊은 시절 중학교 축구감독을 지낸 이 대표가 산을 탄지도 벌써 20여 년이나 됐다고 한다. 큰 덩치에 산적같이 생겨도 배려심이 많고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나이 중에 사나이라는 것이 이청길 대표를 잘 아는 분들의 귀띔이다. 이집 음식을 먹어본 사람들은 ‘보약’을 먹은 것 같다고 평가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청길 대표 부부의 음식장사 철학은 “가족을 위해 건강밥상을 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주 토박이 이청길 대표에게 파주시민들은 가족과 같다. 부부가 파주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린 지도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파주를 넘어 대한민국 국민이 가족이다. <음식점 정보> 상호: 고기랑 찌개랑 주소: 경기도 파주시 금정로 64(금촌통일시장 인근) 예약문의: 031-959-6689 ※능이백숙은 예약 필수 ※토요일은 산에 가기에 휴무지만 예약을 하면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