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듣는다] 원철희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이사장 (下)
“준거집단의 모범이 국가를 발전시키는 원동력”
2016-07-16 21:59:00
[원로에게 듣는다] 원철희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이사장 (上) 에서 이어집니다.
만약 농식품부 장관을 맡는다면 농정/식품 정책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장관이 될 기회도 없어서 말하기 조심스럽다. 만약에 제안을 받는다면 내가 하려고 하는 뜻을 5년 동안 보장해준다는 약속을 받고 하겠다. 대통령 의식부터 시작해서 근본적으로 바꾸도록 할 것이다. 지난 5월에 징검다리연휴를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고속도로 통행료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건설교통부 장관이 농민을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로 며칠간 고속도로 통행료를 안 받는 대신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농민들이 특산물을 들고 와서 팔 수 있도록 한다. 이런 것이 농림부 장관이 아닌 건설부 장관의 아이디어다. 농촌을 살리자는 것에 대해 전 장관이 가담을 하고 응원을 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2년 넘게 일하면서 농민을 위해서 제일 크게 한 일 중에 하나가 무허가 축사 10만동을 양성화시킨 적이 있다. 전두환 정부 당시 쌀값을 올려주지 않고 축산을 부업으로 하도록 했다. 후에 보니 모두 무허가 축사여서 농민들이 모두 범법자가 됐는데 정치적으로 해결을 해주지 못했다. 이런 문제는 6개 부처가 합의해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설득을 하고 대통령에게 건의를 해서 양성화시켰다. 농정이 성공하려고 하면 다른 부처가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성공할 길이 없다. 그런데 제일 힘이 없는 농림부 장관이 무슨 수로 그 협조를 끌어내겠는가. 불가능에 가깝다.
성공적인 귀농을 위해서 나아갈 방향이 있다면.
도시민들이 전부 농촌에 별장을 하나씩 갖는 시대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귀농 중에서 제일 성공한 사람, 제일 정착을 많이 한 사람은 일단 시골에 집 가진 사람이 정착을 한다. 그러고 별장이지만 왔다 갔다 하면서 농촌의 정서를 익힌 사람이 또 귀농 성공률이 제일 높다.
기업들이 농업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일본은 기업들이 연고지를 갖고 있는 지역의 농업에 투자하도록 지원한다. 기업은 땅을 직접 소유하길 원하는데 정부는 농민의 반발이 있으니 빌려주겠다는 입장이라 문제가 된다. 최근에 보면 닭으로 성공한 하림이라는 기업이 있지 않나. 하림의 닭 공장을 유치하면서 그것과 연관된 농민들은 어느 정도 사는 것으로 안다. 기업의 투자는 돈 버는 것이 목적이니 경제적 약자가 나중에 희생될 수밖에 없다. 기업에 대한 적절한 견제를 협동조합이 하면 된다. 협동조합만 갖고는 힘들고 두 가지를 모두 병행하는 길 밖에 없지 않나 싶다.
법대를 졸업하셨는데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팔자인 것 같다.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던 당시 고모부가 수원에 조그마한 과수원을 가지고 계셨다. 그곳에서 본 책이 류달영 저자의 ‘새 역사를 위하여 : 덴마크의 교육과 협동조합’ 라는 제목이었다. 그때는 단순하게 훌륭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대학 졸업, 군대 장교 전역 후 공화당에서 몇 년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장덕진 씨를 알게 됐는데 개인적으로 보좌를 하다가 그분이 농림부 차관이 되는 바람에 협동조합하고 연관을 맺게 됐다. 겪어보니 내 개성과도 맞는 것 같고, 제대로 된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도 뜻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국가 원로로서 지금 현재의 사회는 어떻게 보이는가.
불행하게도 우리는 1등 국가를 역사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1등 국가가 된 다음에 흐트러져서 떨어졌으면 1등 국가의 추억이 있기 때문에 다시 그걸로 돌아가려는 복원력이 있는데 우리는 지금 2등 국가에서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이다.
1등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독일 같은 나라가 1등 국가다. 국민의식, 나라를 지키려는 생각, 문명 등 전체적으로 1등 국가다. 1등 국가를 경험해본 나라는 다시 떨어지더라도 복원력이 굉장히 강하다. 그런데 1등 국가를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는 1등 국가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2등 국가인 지금 상태에서 만족해버린다.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닐까 싶다. 준거집단이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줄 때 밑에 사람이 따라간다. 제일 위에 있는 사람이 모범을 보여주지 않으면 국민들도 따라가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초기 로마가 흥할 때는 귀족들이 자기들이 직접 전쟁터에 몸을 바치면서 국가를 지키는 모습을 보이니 리더십이 서고 국민이 부강한 나라가 됐다. 나중에는 직접 나가는 대신 돈을 내고 용병을 쓰게 되면서 점점 후퇴되고 결국 나라가 멸망해버리고 말았다.
우리 국민들이 존경할 만한 인물을 꼽는다면.
여러 사람이 있는데 일생동안 가깝게 지냈던 분 중에서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 같은 분이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같은 사람도 신념이 강한 사람이다. 고집스럽고 본인만 잘났다고 하는 것이 결점이긴 하지만 경제부총리가 됐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20대 국회가 열렸다. 기대하는 바가 있는가.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보다는 남의 실수로 지지를 받으려고 하는 정치를 바꿔야 한다. 굳이 얘기하자면 공부 좀 더하라고 말하고 싶다. 국회의원들이 일은 열심히 하는데 공부를 좀 더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WTO 이후 정부가 쌀값을 올려주지 않는 바람에 우리나라 농민이 어려움에 처해있던 적이 있다. 다른 의원들은 그때의 이슈에 맞춰 질문을 하지만 나는 한결같이 모든 농업 기관장에게 직접지불제에 대해 물었다. 내가 계속 직접지불제 얘기를 꺼내자 질의하는 의원이 자꾸 늘어났다. 마지막 국정감사에서 22명이 모두 직접지불제에 대해 질의를 하고 제도화됐다. 그런 것처럼 공부를 해서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보람된 일이나 아쉬웠던 일이 있다면.
농협을 농민 중심으로 움직여보려고 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보람 있었던 것 같다. 아쉽게도 완성을 하지 못하고 그리다 만 그림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인간은 원래 미완성이니까 그리다만 그림으로 끝나는 것 아니겠는가. 누군가가 후배들이 그것을 마저 그려줬으면 좋겠다.
앞으로 개인적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 있는지.
농식품신유통연구원에서 13년째 일하고 있는데 그동안은 마케팅만 연구를 했다. 앞으로는 단순한 마케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품질관리, 생산관리에서부터 레벨업 시키는 걸 포함한 마케팅을 하려고 한다. 농협이 하고 있는 가공산업 공장들, 개인 식품기업이 하는 공장들을 중소기업청하고 제휴를 해가지고 자금을 얻어서 연구를 해서 생산관리의 질을 높이는.. 마케팅이 그런 걸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영역을 좀 바꿔서 폭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평생 협동조합 관련 일을 해왔는데, 최근 조그만 협동조합이 많이 생기고 있다.
영세한 협동조합치고 크게 성공한 곳이 없다. 규모가 가장 큰 농협도 성공을 못하는데 조그만 협동조합이 어떻게 성공을 하는가. 회사를 만드는 것처럼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지만 성공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농협이 협동조합으로 실패했다고 하면 다른 협동조합들이 모두 좌절하지 않겠는가. 농협이 성공을 해야 조그만 협동조합들도 협동을 해서 성공하자는 붐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끝으로 혹시 못다 한 말씀이 있다면.
나처럼 평범한 사람한테 별걸 다 물어보는 바람에 외람된 얘기를 많이 한 것 같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난 사람으로서 내가 나서 자란 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좋은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자식, 손자들이 불행하게 살지 않고 제대로 된 나라에서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국민이 500만 명이 조금 넘는 덴마크가 OECD국가 중 행복도 1위다. 협동조합이 기반이기 때문에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게 없고, 그만큼 국민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이다. 그런 나라 정도는 우리가 노력을 하면 만들 수도 있지 않겠는가.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조직, 여기서부터 시범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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