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에 의하면, 정부는 지난 수년간 남아도는 쌀을 사료용으로 팔면서 1조8천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봤다고 한다. kg당 2,191원에 사들여 그 10분의 1 가격인 208원에 사료용으로 팔면서 초래된 손해다. 그 양 또한 어마어마하다. 2006년부터 정부는 지난 3년간 우리 국민 전체가 4개월가량 먹을 수 있는 쌀 101만톤을 사료용으로 공급하였다.

 

남아도는 많은 쌀을 간수하느라 막대한 혈세가 공중으로 사라져버렸다. 이 돈이면 2015년 기준으로 농가당 165만원을 줄 수 있으며, 미래 우리농업을 짊어지고 나갈 젊은 농가를 대상으로 한다면 40세 이하 청년농가에게 농가당 무려 1억2,529만원씩 나누어 줄 수 있는 돈이다. 국민의 혈세를 이렇게 썩혀버리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건전한 상식으로는 좀체 납득하기 힘들다. 

 

쌀 생산 과잉문제는 일찍부터 충분히 예견되었던 일이다. 문제는 어떻게 아무런 대책 없이 이렇게 문제를 계속 키우면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느냐 하는데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 국민의 쌀 소비량은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었다. 소득이 늘어나면 입맛이 다양화되고 고급화되며, 그렇게 되면 쌀에 대한 의존도 그만큼 엷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오늘의 쌀 과잉문제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애써 눈감고, 외면한데서 초래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만은 쌀 중심의 식생활 패턴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에 기대어 근본적 처방을 고민하지 않은 채 그때그때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해온 결과에 다름 아니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었던 이웃 일본이 이러한 길을 앞서 걸어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우리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1970년 134.8kg을 정점으로 1980년 132.4kg, 1990년 119.6kg, 2000년 93.6kg으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61.8kg으로 역대 최소를 기록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소폭은 더욱 가팔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30년 사이에 국민 한사람이 먹는 쌀 소비량은 반 토막이 났다. 그럼에도 쌀 생산에 매몰된 우리 농정의 근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오히려 강화되기까지 한다. 그동안 쌀 생산 기반 조성에 퍼부은 막대한 돈과 노력은 차치하고라도 최근에도 직접 쌀 생산을 독려하는 다양한 지원정책들이 여전히 강구되고 지속되고 있다. 쌀 생산 농가의 소득보전을 위해 도입한 쌀 생산직불제가 그 대표적 예이다. 

 

정부는 쌀 생산 농가에게 재배면적 기준으로 매년 일정금액을 그냥 정부 돈으로 지급하고 있다. 현재 쌀 고정직불제란 이름으로 ha당 100만원씩 무차별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나아가 쌀 가격 하락에 따른 소득 보전을 위해 정부가 쌀 목표가격을 정해놓고, 그해 쌀의 시장가격이 목표가격을 밑돌면 그 차액의 대부분을 정부에서 보전해주고도 있다. 쌀 변동직불제란 이름의 직불제가 바로 그것이다. 매5년마다 목표가격을 정하는데, 금년은 앞으로 5년간 적용될 목표가격을 결정하는 해이다. 현재 목표가격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금년에는 지금까지 목표가격 산정 시 배제되었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기로 여당과 정부 간에 이미 합의를 하였고, 앞으로 관련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한다. 야당은 여기에 한 술 더 떠 정부와 여당이 제시한 19만6천원보다도 높은 24만원 안팎의 목표가격을 주장하고 있다. 

 

쌀이 가축사료로 이용될 정도로 남아돌고 있고, 남아도는 쌀을 보관하고 관리하는데 막대한 재정지출이 소요되고 있는 실정임에도 쌀 생산을 지지하는 정책은 더 견고해지고 있다. 한손으로는 생산 과잉된 쌀을 보관하느라 막대한 혈세를 날려 보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쌀 생산을 부추기는 데 또 많은 돈을 쓰고 있다. 물론 쌀 의무수입에 따른 급격한 쌀 가격 하락으로부터 농가소득을 챙겨야 하는 정부의 고민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정책이란 방향이 있고, 앞뒤가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 농정의 입장이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문제는 이러한 모순구조가 언제까지나 지속가능하냐 하는 것이다. 쌀 소비량은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것인데, 이러한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어떤 움직임도 여태껏 보이지 않는다. 논란만 분분하다. 쌀이 부족하던 시절의 쌀 증산 농정프레임이 쌀 공급과잉 시절에도 바뀌지 않은 채 여전히 씌워져 있는 격이다. 세상은 변하는데 농정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자가당착에 빠진 이러한 우리 농정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무엇보다도 왜곡된 농정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그 일단의 원인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체행동을 일삼는 투쟁일변도의 생산농민, 표심에 좌우되는 정치인, 소신 없는 농정당국이 어울려 빚어낸 불합리한 의사결정 시스템이 먼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의사결정 구조가 객관적이지 못한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쌀 목표가격 결정을 앞두고 있는 지금, 농민들에게 생색내기 위한 갖가지 제안들이 국회 논의과정에서 경쟁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러는 가운데 농정의 모순은 더 커져만 간다.  

 

오랜 시간에 걸쳐 고착화된 이러한 농정의 관행을 바꾸고 고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농정의 주체들 즉, 농민과 정치권, 농정당국 등이 각각의 이해관계를 토대로 서로 끈끈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표심을 의식하여 농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농정당국은 정치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가 없으며, 그러는 사이에 농정의 합리성은 실종되고 있다. 

 

쌀 생산과잉을 둘러싼 농정문제의 성격이 이렇듯 구조적이라서 쉽게 고쳐질 것 같지가 않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식이어서 답답한 심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농정의 앞날이 미덥지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쨌든 먼저는 우리 농업의 미래를 객관적으로 설정하고, 그 속에서 농민의 궁극적 이익이 무엇인가를 이성적으로 따져보는 데서부터 접근해야 한다. 보호와 지원에 익숙해서는 역량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이 가르쳐준 진리이다.  보다 긴 안목에서 상충되는 이해를 합리적으로 조율하고, 합의를 도출해가는 지혜가 아쉬운 대목이다.

 <필진소개>

이병기님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의 농업정책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한 경험이 풍부하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신활력사업 자문위원과 한국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위원, 경기도 도시계획위윈회 위원, 한국새마을학회 부회장, UN FAO(UN식량농업기구) National Consultant 등을 역임했다. 

현재 협성대학교 도시행정학과 교수와 한국농어촌유산학회 회장, 베트남 농업농촌개발전략연구원(IPSARD) 정책자문단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중앙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를 취득했으며, 저서로는 지역개발이론과 정책(박영사, 2018.8)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