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눈이 내렸다. 첫눈이 아름답게 내린 것처럼 두 번째 눈 또한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며 내렸다. 지난 여름이 살인적이라 할 만큼 무덥고 끝없어 다시는 가을이 올 것 같지도 않았고, 가을이 왔다가도 겁나는 겨울이 금세 닥쳐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가을은 애잔하게 비단 너울을 산천에 흩뿌리며 다가와 오래 머무르더니 이제야 겨울에게 바톤을 넘겨주었다. 

 

단풍놀이를 따로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아파트 주변, 자투리 공원 등 도시에서도 저마다 아름다운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을 풍경 뿐 아니라 흰 눈이 덮인 겨울 풍경도 아름답다. 올해는 여름은 여름답게 가을은 가을답게 지나더니 겨울도 겨울답게 눈과 추위 모두를 선사하려나 보다. 대도시 뿐 만이 아니라 지방 도시에도 시골에도, 돌아보면 아름다운 정취를 풍기는 공원들이 주위에 산재해 있다. 모두들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런 만큼 모두 자기 동네가 제일 예쁘다고 자랑하는 사람 일색이다. 

 

이솝 우화에 ‘시골 쥐와 서울 쥐’라는 이야기가 있다. 서울 쥐가 시골 쥐를 서울로 초대했다. 유명 셰프의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고 손님용 킹사이즈의 침대로 안내하며 뽐내지만 시골 쥐는 즐겁지 않다. 맛있는 된장찌개, 상추쌈밥에다가 뜨끈한 아랫목이 생각나서이다. 게다가 서울은 위험한 일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서울 쥐 역시 시골에 내려가 보지만 친구가 밭에 나가 뽑아주는 채소들이 수경 재배한 유기농 식품이 아니라서 불안하다. 자동차의 배기가스에는 익숙해 있지만 양돈장이나 퇴비에서 나는 냄새는 불쾌하다. 결국 서울 쥐는 그날 밤 시골에서 잠자기를 포기한 채 자동차를 운전해 서울로 돌아오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21세기 버전으로 조금 수정했음)

 

작자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각자에게 맞는 생활 방식대로 살아야 행복하다는 의도로 썼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자기 것만 좋다고 고집하다 보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해진다. 

 

대도시 사람들도 시골 사람들도 다 함께 사랑하고 가고 싶어 하는 공간은 어디일까?

정원 안으로 들어서면 한 사람이 걸어 갈만한 오솔길이 나타나고 길 양쪽에는 작은 꽃들이 피어있다. 길은 똑바르게 나지 않고 저 끝이 보이지 않게 굽어 있다. 처음에는 키 작은 사과나무 숲이 보이더니 다음엔 납작한 비 가림 지붕아래 포도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때는 과일 알이 여물기 시작할 때이자, 여름의 초입이다. 어디선가 라벤더 향기가 풍겨온다.

이는 내가 그린 지도 속에 등장하는 나무와 꽃들이다.

 

이 광경은 내가 낮에 꾸는 백일몽 속에도 나오며 밤에 꾸는 꿈에도 반복된다. 시기는 ‘타샤 튜더’란 동화작가이자 원예가에 대한 다큐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이기도 했고, 평창에 있는 ‘허브나라’ 정원을 방문하고 돌아왔을 때이기도 했고 담양에 있는 ‘죽화경’이란 정원을 둘러보고 돌아왔을 때이기도 했다.

 

나는 원예가도 아니며, 화가도 디자이너도 아니며, 또 건축가도 아니다. 그러나 한 남자와 결혼해서 세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주부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오는 동안 그 모든 것이 되었다. 집안을 예쁘게 공들여서 장식하려고 꽃꽂이를 배우는 동안 꽃이나 나무의 생리에 대해 알았고 디자인에 대해서 배웠다. 고장 난 전구나 수도전을 갈아 끼우면서, 갑작스런 정전에 대처하면서 건축가의 일을 담당했다. 그래서 나는, 또는 나와 같은 주부들은, 세상의 많은 일들이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쪽으로 간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아 버린 것이다. 

 

도시의 부자들은 돈을 가지고 아름다움을 산다. 그들이 그렇게 의식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도시의 부자들이 돈을 가지고 아름다움을 사고 시골의 부자들은 자연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다르지만 말이다.

 

시골에 내려와서 사는 첫 해부터 자연과 더불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소명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시 사람들도 시골사람들도 모두 가고 싶어 하는 장소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도를 그린다. 꿈속에서도, 상상 속에서도, 실지로 종이 위에서도 지도를 그린다. 그 지도 속에 서울 쥐도 시골 쥐도 모두 가고 싶어 하는 꿈의 정원이 있다.

 

<필진소개>

조은경님은

* 2015년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 소설 ‘메리 고 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등 발표

* 2017년 경북 영천으로 귀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