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말랭이에 무친 외할머니 이야기’
실항민의 아픔이 담긴 2019 한식문화 이야기 공모전 장원 수상작

한식에 담긴 우리의 문화, 밥상에 묻어있는 가족의 사랑과 그리움, 한식이 주었던 따뜻한 위로 등 한식과 관련된 추억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의 양식’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런 추억을 함께 나누기 위해 2019 한식문화 이야기·삽화 공모전 ‘우리가(家)한식’을 진행했는데 16일 수상작이 발표됐다. 이에 밥상머리뉴스는 장원상(대상)을 받은 ‘무말랭이에 무친 외할머니 이야기’(이재윤, 필명: 기며니)의 전문을 소개한다. 이 작품은 이북식 무말랭이 반찬을 소재로 평생토록 고향을 그리워한 실향민이셨던 외할머니의 사연을 담았다. 무말랭이에 무친 외할머니 이야기 - 작성자: 이재윤 (필명: 기며니) 외할머니의 무말랭이는 빨간색이 아니었다. 고추장과 고춧가루로 양념한 새빨간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잘게 썰어 몇 번을 말렸다 불렸다를 반복한 무는 새끼손톱 길이에 아주 얇았다. 흡사 한 뭉치의 구더기 같아 보였다. 간장과 참기름으로 양념한 무말랭이는 허여멀건한 옅은 갈색이었다. 이 이북식 무말랭이를 숟가락으로 한가득 떠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거리면 씹는 맛이 독특했다. 꼬들 거리면서도 눅눅하고 물렁하면서도 아삭했다. 무 특유의 짭조름하고 알싸한 맛이 몇 배로 압축돼 강한 맛이었으나 이내 고소한 참기름과 간장이 스며 코까지 고소한 향이 올라왔다. 나는 외할머니네서 무말랭이를 먹을 때면 반찬이 아니라 밥처럼 먹었다. 외할머니는 무말랭이 맛을 안다며 나를 예쁘다 했다. 밥은 그대로 두고, 원형 사기 반찬통도 반 정도 쌓인 새로 무친 무말랭이만 다 긁어먹은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그럴 때면 밥상머리에 같이 있던 이모들은 이내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 어렸을 때는 맛도 없는 무말랭이 귀하다면서 젓가락으로 집어먹어도 아껴먹으라고 뭐라 하더니만..." 나는 이모들이 푸념할수록 더 얼마 없는 무말랭이를 한 술 가득 퍼 먹었다. "얘는 눈치도 없이"라며 둘째 이모가 내 머리에 꿀밤을 꽁하고 쥐어박을 때까지. 보란 듯이 더 과하게 무말랭이를 밥보다 더 많이 먹어댔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평범한 밥반찬은 아니었다. 외할머니와 한집에 같이 살던 다섯째, 막내 이모는 "저놈에 무말랭이 만들면서 죽겠다 거리고 지겨운 옛날 얘기하다 운다"며 푸념했다. 오래된 주공 아파트 꼭대기 15층 외할머니 댁엔 햇살 드는 마룻바닥에 깔린 신문지 위로 잘게 썰린 무들이 늘 말라가고 있었다. 무를 써느라 손목이 시큰거려서 혼났다는 말을 외할머니는 몇 번을 반복했다. 그때만 해도 무는 댕강댕강 쉽게 썰어내는 건 줄 알아서 할머니가 엄살 핀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를 처음으로 썰어본 건 중학생이 됐을 무렵이다. 라면이나 볶음밥 등 간단한 요리들을 한 두 개 정도 할 줄 알았던 터라 양파, 감자, 당근 등을 썰어봤더랬다. 매 해 깍두기 담그려던 엄마가 처음으로 손목이 아파 더 이상 무를 못 썰겠다고 했을 때였다. 다른 야채 썰듯 서걱서걱 대충 칼질하면 되겠지 생각하며 호기롭게 무를 썰어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아직 무는 못 썰 거라며, 손 다친다며 한사코 말렸다. 그러다 결국 손가락 마디까지 아프다며 나에게 칼과 무를 넘겼다.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면서. 무는 다른 야채와 달랐다. 마치 돌덩이를 써는 것 같았다. 지름은 왜 그렇게 큰지. 허벅다리통만한 무는 빈틈이 없는지 칼날이 들어가지 않아 반으로 쪼개기도 힘들었다. 둥근 원통 모양 무의 네 귀퉁이를 잘라 육각형으로 만들고, 그 사각 면을 다시 썰고 썰었다. 무의 3분의 1토막도 못 자르고 식칼을 놓았다. 손잡이와 칼등을 양 손으로 잡고 온 몸의 무게를 실어 내리눌러도 무는 썰리지 않았다. 조금의 요령도 없이 정직한 손목과 손가락의 힘이 정확하게 들어갈 때만 무가 썰려나갔다. 이렇게 힘든데 그냥 사 먹으면 편할 텐데. 내 손으로 만들어 내 새끼에게 먹이겠다는 집념이 있어야만 끝까지 썰 수 있는 게 무였다. 이 바위 같은 무를 구더기 크기까지 고르게 잘라내며 외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할머니는 왜 무를 썰다 울었을까. 외할머니는 응석받이와 생활력 강한 가장의 모습 모두를 지녔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보다 더한 양면성을 가진 할머니의 감정 기복은 나이가 들수록 심해졌다. 즐겁게 여행을 가는 길에, 가족들이 오랫동안 준비해 큰 결심하고 간 고급 레스토랑에서 맥락 없이 엉엉 소리 내 울면서 옛날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넉넉한 시댁과 친정 덕에 걱정 없이 낳아 키우던 큰딸을 등에 엎고 전쟁통에 맨발로 강을 건너고 시체산을 넘어 영문 없이 남한에 오던 그 날이 자꾸 떠오른다며. 샌님 같은 외할아버지는 북한에서 대규모로 목재사업을 하는 집안의 아들이었다. 공부만 잘하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던 외할아버지가 남한에 오니 생활력 없는 샌님일 뿐이었다. 사업을 해보자던 동료에게 큰 사기를 당한 후 외할아버지는 사회로 나가질 못했다. 손 벌릴 곳도 없는데 다섯 딸은 무럭무럭 자라며 점점 더 돈이 필요해졌다. 도도한 깍쟁이였다는 외할머니는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속내를 친구들에게 비치지 않던 자존심 강한 그녀였는데. 친구들에게 화장품과 밀수입한 외국 과자들을 팔기 시작한 거다. 다섯 딸을 공부시키고 먹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할머니는 그렇게 화장품이 가득 들은 보따리를 들고 남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외할머니는 그렇게 30대와 40대를 억척스럽게 돈벌이에 바쳤다. “혀에 쓰인 이북식 무말랭이 레시피” 외할머니의 팔십 몇 해 생신날. 당신이 낳은 다섯 딸과 사위들 그리고 손주, 손녀가 한자리에 모였다. 손주들의 장기자랑이 끝나고 흥이 오른 사위들이 할머니에게 같이 춤을 추자며 손을 잡고 나와 노래를 권했다. 할머니는 노래와 춤을 한사코 거절했다. 할머니는 북에 두고 온 어머니가 생각나 춤추고 노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흥겨운 생일잔치상은 별안간 터진 할머니의 눈물로 싸해졌다. 외할머니는 6남매의 막내딸이었다. 평양 부잣집의 막둥이는 1923년에 태어나 온 가족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컸다. 유복한 집의 막둥이가 으레 그렇듯 걱정 없이 자라며 노래하고 춤추는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북한 무용수 최승희가 어린 외할머니의 춤사위를 보고 할머니가 결혼한 후에도 다시 찾아와 춤꾼이 돼보지 않겠느냐고 했단다. 이 대단한 제안은 가지 못한 길이 아니라 막혀버린 길이 됐다. 피할 길 없던 일제시대와 6.25 전쟁이 재능 많은 소녀의 인생을 영원히 비틀어버린 것이다. 외증조할머니는 막내딸을 살리려 "북에서 중공군과 빨갱이들이 쏟아져 내려오니 먼저 남으로 가있으라"며 단호하게 외할머니의 등을 떠밀었다고 한다. 등에 큰 이모를 업은 외할머니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신발이 닳아 없어질 만큼 걷고 또 걸었다. 등 뒤에서 총소리가 나며 옆에 걷던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질 땐, 하루빨리 남한에 도착해 엄마에게 위치를 알리겠다는 생각만 하며 찢어진 맨발로 암흑 속을 가르며 아이를 안고 죽도록 뛰었다. 이게 끝이었다. 한반도를 반으로 가른 선이 남과 북에 수억 개의 이별을 만들었다. 곧 따라 내려오겠다고 했던 외할머니의 엄마는 38도 선을 넘지 못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그리울 때면 이를 앙 물고 굳이 힘든 과정을 거쳐 무말랭이를 만들었다. 외할머니의 엄마, 나의 증조할머니는 커다란 한옥집주인 마님이었다. 장작 패는 하인, 요리하는 하인이 있었지만 무말랭이만은 직접 만드셨다고 한다. 사랑하는 막내딸인 우리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짭조름한 이북식 간장 무말랭이만은 당신 손으로 지어 먹이셨다. 칼날이 안 들어갈 만큼 단단한 무를 천천히 썰고 또 썰어 겹치는 부분 없이 판판하게 잘 펴서 햇볕에 말리고, 다시 물에 헹구고 또 말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동안. 외증조할머니는 외할머니를 품에 안고 쓰다듬으며 노래하셨다. 무의 물기가 햇볕과 바람에 날아가며 내는 달큼한 냄새를 맡을 때면 외할머니는 엄마품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을까. 삶의 무게에 짓눌려 숨을 못 쉴 만큼 힘든 날에도 외할머니는 기댈 곳이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물건을 좀 사달라고 하도 많이 이야기를 해서 보통의 친구에게 하듯 힘들다고 하소연할 수 없었다. 생활력 없는 남편도 매일 학비가 없다, 기성회비가 없다 징징대는 다섯 딸도 모두 외할머니에게 기대 살아가는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날이면 할머니는 밤새 무말랭이를 만드셨다. 커다란 무 하나를 손목이 시리도록 다 썰어도 말리고 나면 한 줌이 채 안 된다. 눈물과 그리움이 담긴 반찬 앞에서 철없는 딸들은 다른 집처럼 계란이나 소시지가 먹고 싶다며 투덜댔다. 비싸지도 않은 무와 간장으로 만든 반찬을 다섯 딸은 마음대로 먹지도 못했다. 무말랭이로 숟가락을 뻗을라 치면 외할머니는 매서운 눈초리로 "젓가락으로 먹으라우!"라고 했다. 얼마 없는 무말랭이를 다섯 딸이 골고루 나눠먹게 하려고 그랬던 거였는데. 삶의 무게에 눌린 외할머니가 눈물로 버무린 반찬에 담긴 사랑은 사라지고 날카롭게 뱉는 말만 어린 딸들의 마음에 박혀 서운함만 남긴 거다. 그렇게 외할머니의 무말랭이 속에는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가난했던 지난날 다섯 딸을 배불리 먹이지 못한 미안함이 켜켜이 스며있었다. 다른 친척 언니 오빠들은 맛이 없다며 안 먹는 무말랭이를 나는 할머니의 예쁨을 받으려 한 숟가락 가득 퍼먹었다. 외할머니는 영악한 내 속을 아셨으려나……. 나를 주려고 만드셨다며 손바닥만한 사기 반찬 그릇에 담아주신 이북식 무말랭이는 사실 우리 집 냉장고로 가면 꽤나 오랫동안 냉장고 한켠을 차지하다 결국 곰팡이가 났었다. 과거와는 다르게 식탁에는 계란과 소시지는 물론 각종 반찬과 피자 치킨 등이 차고 넘쳤다. 무엇보다도 집에서까지 외할머니 기분 좋으라고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이북식 무말랭이는 만들기 까다로운 데다가 맛까지 심심해 가성비 떨어지고 인기 없는 반찬이 됐다. 외할머니 앞에서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반찬이었던 무말랭이는 할머니 연세가 8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식탁에서 사라졌다. 할머니의 몸은 무를 잘게 썰만큼의 힘을 내지 못했고, 연골이 사라진 온몸의 관절 사이가 고통을 뱉어냈기 때문이다. 다른 집보다 좀 더 자주 평양냉면과 평양식 완자 집을 찾아가는 것으로 할머니의 향수병을 달랠 뿐이었다. 가족을 북에 두고 남으로 내려온 외할머니의 형제들은 백두산 국경지대 등을 활용해 50년 넘게 갖은 방법으로 어머니(외증조할머니)를 찾았다. 2000년대 초반이 돼서야 증조할머니의 묫자리와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찍은 사진만 찾았다. 무용을 잘했던 막내딸의 머리가 다 희고 얼굴은 쭈그렁 방탱이가 된 모습을 꼭 어머니께 보여드릴 거라는 말을 할 때면 외할머니는 아이처럼 행복해했었는데 말이다. 아주 어릴 때 어깨너머로 본 게 전부인데도 엄마가 하던 무말랭이 맛을 그대로 냈다며 당신이 만든 무말랭이를 꼭 드리고 싶다고 했었다. 부잣집 막내딸을 억척스러운 보따리상으로 바꿔버린 38선, 모녀가 가장 좋아했던 반찬통을 들고 친정집 가는 길도 막아버린 휴전선. 수많은 이의 운명을 갈라버린 이 선을 넘어 하늘에서 만난 증조 외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서로의 흰머리와 주름을 매만지며 몇 시간을 부둥켜안고 울었겠지. 그러고 나서 하늘에도 무가 있다면 모녀는 돌 같은 무를 잘게 썰고 또 썰어 밝은 볕에 말리고 계실 것 같다. 놀랍게도 외할머니의 무말랭이 레시피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다섯 딸을 포함해 정말 아무도 없단 말이다. 야속하기도 하지. 나는 무를 써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임을 알고도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려고 무말랭이를 한가득 퍼먹기만 했다. 다섯 딸들, 이모들은 그저 어린 날의 상처이자 지긋지긋한 무말랭이였을 뿐이다. 그래도 빨갛고 아삭하고 두꺼운 무말랭이를 먹을 때면 "이건 진짜 무말랭이가 아니야"라는 생각을 참지 못하고 말로 뱉어내는 우리는 분명히 외할머니가 낳고 빚은 딸들이다. 뜬금없이 외할머니가 그리워 목이 메일 때 엄마와 무를 썰어 볕에 말려야겠다. 나중에 외할머니를 만나면 그리고 외할머니의 엄마를 만나면 나도 꼭 자랑하려고. 외할머니가 만든 거랑 똑같은 맛을 찾았다고 할 거다. <사진설명: 55년 동안 엄마를 찾아 헤맨 외할머니의 손엔 2005년이 되어서야 그리운 어머니의 영정사진이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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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쓴맛】 식품산업이 농업을 살린다
보리 가치 높이는 ‘블랙보리’ 음료, 양봉산업 버팀목 ‘꿀꽈배기’ 과자

잊혀져가던 ‘보리’가 어느 음료회사에 의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보릿고개’라는 말로 가난을 상징하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건강한 식재료로 재탄생하고 있다. 특히 농촌진흥청이 2012년 세계 최초로 프리미엄 보리 품종인 ‘검정보리’ 육종에 성공한 뒤 식품 소재로 각광을 받으면서 보리수매제 폐지로 위축되어온 국내 보리산업에 새로운 활로를 열고 있다. 그 활로를 열어준 회사가 (주)하이트진로음료다. 정확히 말하면 곡물음료 개발에 특별한 열정을 가진 조운호 대표이사 때문이다. 조운호 대표는 1999년 웅진식품에서 세계 최초로 쌀을 원료로 만든 ‘아침햇살’이라는 곡물음료를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장본인이다. 그랬던 그가 2017년 하이트진로음료 대표가 되면서부터는 ‘보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 12월에 검정보리로 만든 ‘블랙보리’라는 음료제품을 만들어냈다. ‘블랙보리’는 출시 1년 만인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판매량 4,200만 병을 기록했고, 9월 현재까지는 7,300만 병을 기록하고 있다. ‘블랙보리’ 출시 이후 하이트진로음료의 전체 매출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30% 증가했다. 특히 음료부문 매출은 37% 성장했다. 하이트진로음료는 올해 추수한 검정보리 400톤 수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9월 5일 밝혔다. 이 회사가 수매 계약한 400톤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검정보리의 50%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음료 외에 제빵 등 다른 분야의 수요를 감안해 50%만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검정보리는 현재 전라북도 고창군과 전라남도 해남군을 중심으로 재배되고 있는데, 수요가 늘어나면 재배농가의 소득이 올라가고, 재배면적도 늘어나 농업의 새로운 활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식품산업의 성장이 농업을 살린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아무리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도 이를 팔아주는 소비자가 없으면, 즉 ‘소비 없는 생산’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식품산업과 농업 간 동반성장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농업의 선행산업인 식품산업이 농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사례는 제과 분야에도 있다. 1972년 출시한 농심의 ‘꿀꽈배기’가 좋은 사례다. 47년간 연평균 170톤의 국산 아카시아꿀을 사용하고 있다. 국내 양봉산업을 지탱하는 큰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식품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중국산 농산물을 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사례가 많았지만 국내 생산기반이 무너진 가운데 중국산 원료의 가격이 올라가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국산원료의 사용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식품제조업체의 국산 원료 사용비중은 2019년 현재 약 31%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이 비중을 높일 수 있도록 생산자인 농업과 소비자인 식품산업, 그리고 관계기관의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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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마라열풍, 이대로 좋은가?

매운맛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라면을 출시했던 삼양식품 전중윤 전 회장이다. 직원들이 매운맛 나는 라면을 개발하자고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먹고 국민들이 위장병 걸리면 누가 책임지나?” 그래서 삼양라면은 전중윤 회장이 경영일선에 있을 때는 매운 라면을 내놓지 못했다. 반대로 경쟁업체인 농심에서는 매운 라면 ‘신라면’을 출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출시된 라면 제품 중에 베스트셀러 1위다.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다. 아버지로부터 경영을 물려받은 아들 전인장 회장은 아버지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자 2012년 4월 매운 라면 ‘불닭볶음면’을 출시했다. 그리고 7년 만에 ‘불닭’ 브랜드의 누적매출이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만 2,82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에서 ‘불닭’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60%나 됐다. 그리고 지난 7월에는 ‘마라탕면’까지 출시했다. 매운 라면 출시를 반대했던 창업자 아버지는 2014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가 반대했던 매운 라면으로 회사를 회생시키고 있다. 이 또한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다. 세상에는 ‘선’과 ‘악’의 구분이 애매한 경우가 가끔 있다. 원칙적으로는 ‘악’인데 결과가 좋으면 ‘선’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이 위장병 걸릴까봐 매운 라면 개발을 반대했던 전중윤 전 회장의 원칙이 원래는 ‘선’이었다. 그러나 그런 보수적인 원칙을 깨고 매운 라면으로 회사를 회생시킨,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아들 전인장 회장의 경영능력이 오히려 ‘선’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불고 있는 ‘마라’열풍도 같은 맥락이다. ‘마라’는 매운 맛을 내는 중국 사천 지방의 향신료다. 혀가 마비될 정도로 맵고 얼얼한 맛을 낸다고 한다. 우리 고유의 청양고추도 제대로 못 먹는 필자는 당연히 마라를 이용한 음식을 먹어보지 않았지만, 방송에서 ‘목숨’ 걸고 먹는 꼴을 보면 ‘미친 짓’으로 보인다. 원칙적으로는 ‘마라’라는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맞는 음식이 아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식재료 중에 매운 맛을 내는 것은 고추다. 우리는 오랜 세월 ‘맛잇게 매운’ 그 고추를 활용해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대부분의 한식에는 고춧가루와 고추장으로 매운 맛을 낸다. 그런데 지금은 ‘마라’가 들어가지 않은 식품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지독하게 매운 맛을 좋아했단 말인가. 음식은 문화다. 특정지역에서 특정음식이 발달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국 사천 지방에서 ‘마라’라는 향신료가 생기게 된 것도 그 지역의 기후 때문이다. 중국의 사천 지방은 기온차가 심하고 습한 기후로 인해 음식이 부패되기 쉬운 지방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개발한 향신료가 ‘마라’다. 그런데 우리가 왜 그 ‘마라’를 그렇게 열심히 먹어야 하는가. 우리의 전통 매운맛 청양고추 만으로도 충분히 매운맛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스마트시대의 소비자들은 ‘새로운 음식’을 추구한다. 그래서 여행을 갔을 때 국내에서는 먹어보기 힘든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은 여행의 묘미이자 새로운 경험이라 권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을 국내 식품·외식업체들이 앞 다퉈 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에 어느 치킨 브랜드에서는 ‘허니마라치킨’이라는 메뉴를 내놓았다. 달콤한 ‘허니치킨’과 매운 ‘마라치킨’을 섞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걸 보고 필자는 ‘병(매운맛) 주고 약(단맛) 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맛에 대한 원칙도 없고,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배려는 더더욱 없는 지극히 원시적인 ‘상술’에 불과한 짓이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했느냐가 얼마나 많은 이윤을 추구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식품·외식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자기들이 공급하는 식품과 음식이 국민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최소한의 양심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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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쓴맛】 CJ제일제당, ‘할인’을 미끼로 ‘고객낚시’
할인혜택 내용 밝히지 않고 회원가입 유도하는 '꼼수' 부려

식품업체들이 할인 이벤트를 하는 경우는 두 가지 유형이다. 그동안 이용해준 고객에 대한 감사의 의미이거나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기 위함이다. 어느 경우든 이벤트를 할 때는 사전에 할인혜택에 대한 내용을 공지하는 편이다. 그런데 식품대기업 CJ제일제당이 할인혜택에 대한 공지도 없이 일단 회원가입부터 하게 하는 얄팍한 상술을 부리고 있어 눈살을 찌뿌리게 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가정간편식 전문몰인 ‘CJ더마켓’에서 9월 3일부터 9일까지 인기 브랜드의 제품을 최대 80% 할인해서 판매하는 ‘서프라이즈 위크’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8월 30일 밝혔다. 햇반, 비비고, 고메 등 주요 브랜드의 제품을 파격적으로 할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세 할인혜택은 ‘서프라이즈 위크’ 오픈 당일인 9월 3일에 공개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개 하루 전인 9월 2일까지 CJ더마켓에서 회원으로 가입한 후 사전입장권을 신청하고, 입장권을 발급받은 소비자에 한해서만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할인혜택의 내용도 공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대 80% 할인’이라는 달콤한 선전으로 소비자들로 하여금 자사의 온라인몰에 일단 회원으로 가입하게끔 하는 ‘꼼수’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통상적으로 ‘최대 80% 할인’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 할인 품목 중에 가장 많이 할인해주는 경우가 80%라는 의미다. 또 햇반, 비비고, 고메 등 주요 브랜드의 제품을 최대 80%까지 할인해준다고 하지만 실제 할인혜택을 주는 품목이 몇 개이며, 또 물량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고객의 반응은 크게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대표적인 식품대기업 CJ제일제당과는 어울리지 않는 상술이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소비자가 사전입장권을 받고 기다리는 만큼 기대에 부응하는 다양한 제품과 차별화된 할인 혜택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다지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차라리 ‘신규회원 확보를 위한 할인 이벤트’라고 하면 ‘솔직해서 좋다’라는 고객 반응이 나올 텐데 말이다. CJ제일제당은 지난 7월 8일 가정간편식 전문몰 ‘CJ더마켓’을 오픈했다. 이번 할인 이벤트는 새로 오픈한 온라인몰의 회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정도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데 굳이 그렇게 페인트모션을 쓸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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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쓴맛】 '꿀꽈배기'에는 국산꿀이 들어간다
농심, 국산 아카시아꿀 47년간 8천여톤 사용하며 농업과 식품산업 상생 실천

한국과 일본의 경제전쟁으로 소재의 국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 식품산업에서도 소재(식재료)의 국산화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 식품제조업에서 국산 식재료 사용률은 겨우 3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내 생산기반이 무너진 가운데 수입국의 수출규제나 가격 급등이 일어날 경우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식품산업은 곤란한 지경에 처한다. 결과적으로는 식품 판매가격의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가볍게 섭취하는 과자 하나에도 원료가 국산인지 수입인지를 따져보는 소비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47년간 ‘꿀꽈배기’라는 과자를 만들면서 국산 아카시아꿀만 사용해온 농심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농심은 연평균 170여 톤의 국산 아카시아꿀을 꾸준히 구매하고 있다. 제품 출시 이후 47년간 구매한 국산 아카시아꿀이 무려 8천여톤에 이른다. 이는 스낵업계 최고 수준이란다. 국내 양봉농가와 인연을 맺어온 덕분에 식품산업과 농업의 대표적인 상생 사례로도 꼽히고 있다. 한국양봉농협 김용래 조합장은 “농심과 같은 식품 대기업의 구매는 전국 3만여 양봉농가의 안정적인 판로확대와 소득증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심 꿀꽈배기는 1972년에 출시된 스낵시장 대표 스테디셀러다. 독특한 꽈배기 모양에 국산 꿀로 맛을 낸 허니(honey)스낵의 원조 제품이다. 국산 아카시아꿀을 사용해 은은하고 부드러운 단맛으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 인기 비결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꿀꽈배기 한 봉지(90g)에는 아카시아꿀 약 3g이 들어가는데, 이는 꿀벌 한 마리가 약 70회에 걸쳐 모은 양과 같다고 한다. 농심 관계자는 “제품 개발 당시 인공사양꿀을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차별화된 맛과 품질을 위해 천연 아카시아꿀 사용을 결정했다”면서 “그 점이 꿀꽈배기가 소비자들에게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비결”이라고 말했다. 아카시아꿀은 매년 6월 전국 각지에서 채밀되어, 7월부터 시장에 나온다. 농심은 지난 5~6월 산지조사를 거쳐 지난달 한국양봉농협 등 공급업체와 우수한 품질의 아카시아꿀 구매 계약을 맺었다. 농심 관계자는 “올해 꿀 작황이 좋아 예년보다 많은 250톤을 계약했다”며 “구매한 꿀은 내년 연말까지 사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국내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격 차이 때문에 식품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기업이 많은데, 수출국의 사정에 의해 수입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면 큰 낭패가 될 것”이라면서 “농업 쪽에서는 생산기반을 확충하고, 식품업계에서는 국산 식재료 사용률을 높이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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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쓴맛】 밥솥 수거에 나선 CJ제일제당, “이건 너무하잖아”

CJ제일제당이 밥솥을 가져오면 선착순 15명에게 햇반 1년치를 무료로 주는 ‘햇반 밥솥교환 캠페인’을 벌인다고 한다. 아무리 이벤트라고 하지만 이건 좀 심하다. '쇼' 치고는 싸구려 쇼다. CJ제일제당은 햇반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최근 식문화 트렌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이 캠페인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 캠페인을 위해 CJ제일제당은 달리는 광고판이자 이벤트 장소인 대형 햇반 밥솥교환 트럭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캠페인 기간인 8월 11일까지 이 트럭으로 서울 시내를 순회하며 캠페인을 알리는 동시에 햇반이 집밥을 대체하고 있다는 메시지도 전달한다는 것이다. 빨간색 트럭 외관에는 햇반 모델 배우 박보검이 말하는 TV광고 메시지인 ‘어느새 밥 하지 않는 집이 늘어갑니다’, ‘매일매일 햇반생활’ 등 문구를 새기고, 내부는 밥솥 없이 햇반으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주방 분위기까지 연출했다. 햇반 밥솥교환 캠페인은 ‘햇반줄게 밥솥다오’라는 타이틀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전방위적으로 펼쳐진다. 오프라인 행사는 오는 8월 11일까지 주말에 진행되는데, 사전 고지된 날 햇반 밥솥교환 행사장으로 밥솥을 가져오면 당일 선착순 15명에게 햇반 1년치(365개)를 증정한다. 지난 20일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행사를 연 데 이어, 오는 8월 4일 이마트 평택점, 8월 10일 이마트 죽전점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노현경 CJ제일제당 브랜드마케팅팀 과장은 “햇반 밥솥교환 캠페인은 소비자 라이프 변화에 따라 더 이상 집에서 직접 밥을 해 먹지 않고 햇반으로 식사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트렌드를 기반으로 기획됐다”며, “온라인, 오프라인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이번 캠페인이 실제 햇반의 일상식화가 진행 중인 다양한 가정의 ‘햇반 라이프’에 대한 즐거운 공감과 소통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1인가구가 많아지고, 바쁜 일상을 보내다보니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상품밥'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밥을 못하게 밥솥 수거 캠페인을 전개한다는 것은 지나치다. 공장에서 만든 상품밥은 하나의 대안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 취반문화 자체를 없애려고 하는 것은 대표적인 식품대기업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면 대기업다운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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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을 구매 또는 섭취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편의성
건강지향성
가격
위생 및 안전 ​

- 올여름 폭염은 능이백숙으로 이기자

산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들은 1능이, 2표고, 3송이라고 말한다. 능이가 버섯 중에 으뜸이라는 것이다. 산삼 못지않게 귀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능이버섯을 넣고 끓인 백숙이 더운 여름 최고의 보양식으로 꼽힌다. 올여름은 역대 최악의 폭염이 예고돼 세심한 건강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이에 능이백숙 전문 식당 중에서 기자가 직접 맛을 본 최고의 맛집을 소개한다. 주인장이 직접 채취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식재료다. 양질의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다. 경기도 파주 금촌통일시장 인근에 있는 <고기랑 찌개랑>의 능이백숙은 닭을 제외한 모든 식재료를 주인장이 직접 산에서 채취한 것들이다. 백숙에 들어가는 능이와 산더덕, 그리고 엄나무와 헛개나무, 겨우살이 등 철따라 나는 각종 식재료들은 모두 산적같이 생긴 산사나이 이청길 대표가 직접 강원도의 깊은 산중에서 채취해온 것들이다. 또 백숙에 들어가는 닭은 직접 키우지는 않지만 지인이 키우는 토종닭을 백숙 주문 당일에 잡아온다. 그러니 백숙이 맛있을 수밖에 없다. 버섯찌개·버섯전·산채비빔밥 맛도 예술! 이 가게에는 능이백숙만 있는 것이 아니다. 능이 외에도 산에서 나는 여러 가지 버섯으로 만든 버섯찌개와 버섯전은 맛과 양에 비해 가격이 너무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성비가 높다. 자연산 버섯찌개에는 7~8가지의 버섯이 들어간다. 1만 원짜리 버섯전 한 접시, 다른 식당이라면 적어도 1만 5천원 이상은 받지 않겠나 싶을 정도다. 그런가 하면 산채비빔밥 한 그릇 먹고 나면 저절로 자연인이 된 기분이 든다. 보약을 파는 축구인 출신 산사나이 <고기랑 찌개랑>은 부부가 운영한다. 산에도 부부가 함께 가고 조리도 함께 한다. 젊은 시절 중학교 축구감독을 지낸 이 대표가 산을 탄지도 벌써 20여 년이나 됐다고 한다. 큰 덩치에 산적같이 생겨도 배려심이 많고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나이 중에 사나이라는 것이 이청길 대표를 잘 아는 분들의 귀띔이다. 이집 음식을 먹어본 사람들은 ‘보약’을 먹은 것 같다고 평가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청길 대표 부부의 음식장사 철학은 “가족을 위해 건강밥상을 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주 토박이 이청길 대표에게 파주시민들은 가족과 같다. 부부가 파주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린 지도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파주를 넘어 대한민국 국민이 가족이다. <음식점 정보> 상호: 고기랑 찌개랑 주소: 경기도 파주시 금정로 64(금촌통일시장 인근) 예약문의: 031-959-6689 ※능이백숙은 예약 필수 ※토요일은 산에 가기에 휴무지만 예약을 하면 가능